한 강도와 불치병 -19.3월 둘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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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0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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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강도와 불치병!
 
노인이 사는 집에 강도가 침입해서 주인을 협박했습니다.
“손 들어! 조용히 해!
소리치면 죽어!
돈하고 귀중품 다 내놔!”
“순순히 시키는 대로 하면 목숨만은 살려준다!”
강도의 마지막 협박에 노인의 얼굴색이 겁먹은 표정에서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손을 내리더니 칼을 든 강도에게 소리쳤습니다.
“뭐? 목숨만은 살려 준다고?
이놈아! 의사도 살릴 수 없다는데,  네가 어떻게 나를 살린다는 거야! 이~런! xx”
노인의 분노에 깜짝 놀란 강도는 도망쳐 나와야 했습니다.
아무리 강도라도 시한부 노인의 화를 이길 수 없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말 한 마디가 사람을 바꾸고, 상황과 분위기를 바꾸고, 생각과 태도를 바꿉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잠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남이 듣고 싶은 말입니다.
말 싸움은 모든 싸움의 시작입니다.
어떤 싸움이든 시작되기 전에 막을 수 있습니다.
 
말을 잘 하면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때문에 결국 싸우게 됩니다.
어떻게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손해 볼 각오를 해야 합니다.
모든 대화는 거래입니다.
감정이든 물질이든, 정서든....
 
손해 보고 어떻게 살라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손해가 없었으면 인류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따르는 성도가 조금도 손해 볼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손해 보는 사람에 의해서 평화가 유지 됩니다.
아무도 손해 보려 하지 않으면 평화는 없고 치열한 싸움만 있게 됩니다.
 
현대 사회가 이렇게 소란하고 아픔이 많은 것은 손해 보는 것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유지 되는 것은 부모의 손해 때문이고,
교회가 유지 되는 것도 조용히 헌신하며 후원하고 손해 보는 성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손해 보는 것을 너무 가슴 아파 하지 마세요!
감정과 노력과 시간과 관계와 물질을 손해 보고도 오히려 잘 살 수 있다면
그것보다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말 한 마디도 손해 보려 하지 않으면 삶은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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