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컵 처럼 약한 존재 -20.2월 셋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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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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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컵처럼 약한 존재 *
 
바젤이 낳은 15세기 예술가 홀바인의 목판화 ‘죽음의 무도’처럼
죽음은 왕과 백성, 귀족과 평민, 조부와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기다리고 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동일하다.
죽음 앞에 각 사람은 대체 불가능하다.
인간은 생의 한가운데서 죽음에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 롱펠로우는 ‘인생은 시간의 울타리 안에서 일하는 건축자’라고 했다.
우리의 일생은 건축자가 집을 건축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의 울타리 안에서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사람에 따라 어떤 이에게는 60년을, 어떤 이에게는 70년, 80년의 시간의 울타리 안에
자기의 생각과 사상과 능력에 따라 집 한 채씩을 짓고 간다.
 
구약의 솔로몬 왕은 역사상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부귀와 영화를 누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도서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물은 연하여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는도다.”
에리히 프롬이라고 하는 학자는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인간을 소유형과 존재형으로 구분했다.
삶의 의미와 목표를 소유하는 데 두고 사는 사람을 소유형의 인간으로,
삶의 의미와 목표를 인간답게 존재하는 데 두고 사는 사람을 존재형의 인간으로 이해했다.
 
늘날 많은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목표를 소유에만 두고 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어떻게 사느냐,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 보다는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에만 몰두해 있다.
인간은 영원불멸일 수 없다. 조만간에 썩어 없어질 존재이다.
인간은 유리컵같이 약한 존재이다. 깨지기 쉽고 부서지기 쉽다.
인간은 아무 것도 의지할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 조만간 흙으로 돌아가 그날에 그의 계획은 소멸되고 만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라스콜리니코르는 사람을 죽인 죄책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지쳐
사랑하는 소냐에게 요한복음 11장 나사로의 부활기사를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다. 예수 안에 새 생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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