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해!?..”
참새 열 마리가 일렬종대로 전깃줄 위에 앉아 있었다.
이를 발견한 사냥꾼이 맨 앞에 앉아있는 참새를 향해 총을 쐈는데
떨어진 것은 맨 마지막에 앉아있던 열 번째 참새였다.
왜 그랬을까?
앞의 참새가 날아오는 총알을 보고 뒤에 앉은 참새에게 “피해”라고 외쳤다.
두 번째 참새도 그 다음에 앉은 참새에게 “피해”하고 외쳤고,
세 번째, 네 번째, 모든 참새들이 그렇게 해서 총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홉 번째 참새였다.
이 아홉 번째 앉은 참새는 앞니가 빠진 참새였다.
자기 딴에는 큰 소리로 열 번째 참새를 향해 “피해”라고 외친 것이 “히해”라고 나온 것이다.
이빨이 빠져 말이 헛나온 것이다.
그래서 열 번째 앉아있던 참새가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고 결국 총알을 피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과거 유행했던 참새 시리즈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열 번째 참새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혹시 내가 설교하고 말씀을 전할 때 열심히 “피해”라고 했는데
성도들에게 “히해”하는 소리로 들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때가 있다.
그래서 이빨 빠진 헛바람 소리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수 없는 예배시간, 수 없는 날들, 씨를 뿌리고 싹이 나서 자라 열매 맺기를 바라며,
열과 성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뿌리고 전하려고 힘쓰고 있다.
싹 나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물론 하나님이시기에 결과는 주님께 있지만,
그래도 뿌려진 말씀의 씨들이 잘 자라서 열매 맺기를 기다리는 것이 농부의 마음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어느 한 영혼의 마음 밭에서 말씀의 씨가 움터 올라오는 것을 보면
한 없이 기쁘고, 어느덧 자라서 자랑스러운 신앙인의 모습을 보일 때 힘든 날들의 고단함도 한 순간에 잊혀진다.
그러나 항상 그런 기분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동문서답하듯이 자신에게 들려지는 말씀의 의미와
그 말씀을 전하는 목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와 서운함에 빠지는 일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때면 내가 혹시 이빨 빠진 헛바람 소리를 내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설교하는 것이 즐겁고, 목사로서 성도들을 대하는 것에 한 없는 보람을 느낀다.
단지 스스로 만족해 할 수 없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힘들 뿐이다.
오늘도 기도한다.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설교자로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질 수 있는 목사로,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목회자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