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어느 교회에 담임목회자를 모시기 위해 청빙위원회가 조직되었습니다.
교회의 장로님들과 집사님들, 여러 성도들이 기대와 긴장 속에 모여 있었습니다.
청빙위원들은 각자가 생각한 화려한 스펙의 후보자들을 추천했습니다.
그들의 추천을 다 들은 후 청빙위원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청빙위원 여러분, 저도 아주 훌륭한 분을 한 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분에게는 몇 가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회의실 안이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첫째, 이 분은 한 교회에 오래 머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곳저곳 교회를 옮겨 다니셨고, 우리 교회도 섬기시다 떠나실 가능성이 있습니다.”
몇몇 성도들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스쳤습니다.
“둘째, 설교를 하실 때도 성도들이 듣기 좋아하는 복 받는 설교보다는 늘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만 하십니다.
은혜롭기는 하지만, 요즘 시대에 맞는 다양한 주제의 설교나 재미있는 설교는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회의실에 작은 웅성거림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이 분은 정규 신학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박사 학위는커녕 학위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습니다.” “넷째, 결혼을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혼자 독신으로 지내고 계십니다.”
“다섯째, 목회를 하다가 생활비가 부족해지면 잠시 일을 하러 나가 돈을 벌어오곤 하셨습니다.”
“여섯째, 이분은… 감옥에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는 분입니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눈에 띄게 차가워졌습니다.
“일곱째, 솔직히 말씀드리면 외모도 썩 훌륭하지 않습니다.”
작은 웃음과 함께 불편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여덟째, 간질이라는 질병이 있어 가끔 발작을 겪기도 하십니다.”
“아홉째, 말이 유창하지 않아 설교 전달력도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열째, 현재는 이름 없는 아주 작은 개척교회를 섬기고 계십니다.”
여기까지 듣자 회의실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동요로 가득 찼습니다.
‘아니, 우리 같은 대형교회에…’ ‘도대체 왜 이런 분을…’
실망과 불만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그때 위원장 장로님이 잠시 말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 목회자는 바로…”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도 바울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고개를 흔들던 성도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모두가 깨달았습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오늘날 교회에 담임목회자 청빙원서를 냈다면, 아마도 서류심사에서조차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쓰신 이유는 그의 화려한 배경이나 능력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께 사로잡힌 중심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조건을 보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분명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육신의 질병도 있었고, 부족해 보이는 이력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약점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연약함을 붙잡고 낙심한 사람이 아니라, 연약함 속에서도 은혜를 신뢰한 사람이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흠 없는 사람이어서 쓰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끝까지 신뢰했기 때문에 쓰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성공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라 ‘사도’ 곧 보냄 받은 자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사람의 외모와 조건 보다는 마음의 중심을 보고, 부족함 속에서도 은혜를 의지하며 순종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