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35 가인의 성.

  • 관리자
  • 조회 5
  • 2026.06.12 07:22
  • 문서주소 - http://sungsanch.or.kr/bbs/board.php?bo_table=c_07&wr_id=509

본문: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창세기 4장 16-22절)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여호와 앞을 떠난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삶을 간략하고 담백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하게 살펴보면 객관적으로 단순하게 기록한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내린 심판의 내용은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즉, 땅에 정착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 땅을 떠돌지 않고 놋 땅에 거주합니다. 즉, 정착하여 살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떠도는 생활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성을 쌓습니다. 

 

이 정도면 정면으로 하나님을 향해 반역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어느 정도 추론 가능한 영역이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표'로 만족할 수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표'가 자신을 보호하는데 불완전한 것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안전을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간구했을 것입니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성을 쌓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가인이 거주하며 성을 쌓은 곳이 '놋',유리함인데 하나님의 판결을 상기시켜주는 땅에서 살아갑니다. 

 

가인은 성을 쌓고 그 성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가인'성으로 부르지 않고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성으로 부릅니다. 성을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은 것이 피의 보수자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감추기 위한 행동일 수도 있고, 자신의 한 일을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서 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던 중요한 것은 가인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인간의 계보가 시작되었고 이 계보를 중심으로 도시가 건설되며 도시를 중심으로 문화와 문명이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 인류 문화와 문명의 발전이 신과 반신들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믿었던 고대 근동 세계관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문화와 문명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가인의 계보를 통해서 문명의 출발과 도시 건설, 목축, 악기, 고대 합금 기술 등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가인과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을 떠나 매우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여야 했으며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결과로 매우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렸을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가인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 후손들은 하나님께 공급받을 수 없으므로 인간적인 진보와 수단들로만 생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성과 도시를 건축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노력한 결과로 문명과 문화의 발전을 이루어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의 후손이 성취한 결과들을 용납하시며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 전체에 선언하신 복을 부분적으로나마 누릴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자비를 완전히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살인으로 관계가 파괴되고 단절되어 땅에서 유리하는 자로 저주를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후손이 생존을 위해 사투하며 이루어 놓은 것들에 대해 어떤 평가도 하지 않으시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문명과 문화의 발전은 결국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다스리는 존재'로서의 역할을 통해 드러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범죄한 인간은 타락하여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유보되는 기간동안 부족하고 왜곡되었다고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을 누릴 수 있으며 우리에게 부여하신 피조물을 다스리는 존재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며 살아갑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가인과 그의 후손들로 인한 문명과 문화의 발달은 명암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라멕은 두 아내를 맞이했다고 기록합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통해 한 몸이 이루어지는 결혼을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일부일처제를 통한 가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인의 후손인 라멕은 일부다처제를 시작한 첫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일부다처제를 직접적으로 문제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부다처제로 인한 가정의 불화나 다양한 문제들을 보여줌으로 일부다처제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일부다처제는 고대사회에서 남자들이 전쟁과 다양한 노동의 결과로 남자의 수가 부족하게 되었을 것이며, 출산 과정에서 죽는 여자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수가 농사나 생업에 유리하고 가족의 부와 안전에 필수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일부다처제는 자신이 세운 가정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 대응한 자기 눈에 보기 좋은 최선의 결과였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일부다처제가 용인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죄의 결과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안전과 발전을 추구하는 가인과 그의 후손에게서 일부다처제가 먼저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계보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처럼 비참하게 마무리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명의 진보를 가져왔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부족하고 왜곡되어 잘못된 결과가 도출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화려하고 웅장해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것이기에 가능한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화려함과 웅장함 뒤에 가려진 어두움을 숨기기에 급급합니다.  

 

가인의 후손 중에 구리와 쇠를 다루는 두발가인이 소개됩니다. 아마 두발가인이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무기의 시작도 두발가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두발가인에 의해 농경 도구와 무기가 제작되었을 것입니다. 가인과 그의 후예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영역의 확대를 위해 두발가인이 제작한 기구들과 무기들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기 좋은 것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일들이 발생했을지는 역사의 기록으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가축을 치는 것을 통해 재산과 관련된 다툼과 서로 더 많은 재산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은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쉽게 수긍할 수 있습니다. 수금과 퉁소로 표현된 문화는 쾌락으로 연결되었음을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 도시를 통한 다양한 문화는 좋은 의도로 시작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죄성으로 말미암아 왜곡되고 변질되어 사용되는 것을 막지 못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들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이룩한 문명과 문화라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 공허하고 허무한 결과를 도출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의 파라오 아래서 압제와 착취를 당하면서 가인과 그 후손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이면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의 죽음 위에 건설된 도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도 결국 힘없는 자들의 희생으로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런 화려한 이면에 감추어진 어둠을 경험한 이스라엘로서는 가인과 그 후손들이 세운 도시와 문명이 얼마나 헛되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리며 즐기기 위해 다수가 희생하며 착취당하는 구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착취당하는 자리에서 착취하는 자리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가인의 문화와 세계관을 끝내고 가꾸고 보살피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이스라엘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존재로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실패합니다. 자신들이 착취를 당하던 자리에서 착취를 하는 자리로의 이동을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유를 잊어버리고 가인과 그 후손이 걸었던 길을 걷고자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 홍수로 이 땅을 심판하신 것처럼 멸하지 않으시고 그 아들을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보여주십니다. 화려하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예수의 다스림으로 사망이 힘을 잃고, 그 앞에서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그리고 완전한 회복의 성취와 사망을 이기시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맡기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통해 남은 성취를 이루어가고자 하십니다.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인으로 시작된 세상 문명과 문화의 화려함에 도취에서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삶을 부러워하거나 동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세상을 섬기며 가꾸는 삶은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생명의 풍성함이 있는 삶이요, 세상을 회복케하는 삶입니다. 내 안전과 내 성장을 하나님 없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사랑의 공급으로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의 내면에 어둠이 있다면 그 어둠을 가지고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셔서 어둠이 치유되어 세상을 치유하며 살아가는 복 된 하루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하나님 없이 스스로 성을 쌓고 내 이름을 높이려고 시도하고 있지는 않나요?

 

2. 하나님 없이 자신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 쌓아진 세속의 문화 속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능력과 은혜를 어떻게 그분의 뜻에 맞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3. 내가 속한 사회와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가인과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 없이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킨 것처럼, 나의 삶 속에서 때때로 내 능력과 업적을 의지하며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 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속한 세상의 문화가 나를 하나님을 떠나 나를 위해 살아가라고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내가 내 안전을 책임질 수 있고 더 나은 성장과 발전을 나만을 위해 사용하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없이 쌓아 올린 내가 속한 사회와 문화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P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