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52 수치와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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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7.0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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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창세기 9장 18-29절)

 

오늘 본문은 홍수 이후 노아와 그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진 한 가지 사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은 땅에서 농사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고 땅에서의 삶을 영위하는 평온한 모습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뒤 35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런데 홍수 후 350년을 살아가면서 성경에 기록된 것은 오늘 본문에서 기록된 사건이 전부입니다. 술을 마시고 옷을 벗은 채 잠든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사건을 단순한 사건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이 행동에 대해 성경은 판단하지 않고 아들들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들들의 행동에 대한 결과로 축복과 저주로 나뉘어집니다. 

 

본문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현대의 관점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나옵니다.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창세기 9장에 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직접 '저주'라는 표현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범죄 했는데 저주는 '땅'이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으로 지은 사람을 존중해 주십니다. 그러나 노아는 자신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저주'를 발설합니다. 그리고 그 '저주'를 하나님께서 실행하십니다. 그리고 더 이상한 부분은 노아를 격분하게 한 행동은 함이 저질렀는데 '저주'는 함의 아들 가나안이 받습니다. 이런 이해가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술을 먹고 옷을 벗은 사람은 노아입니다. 함이 아비의 실수를 드러냈다고 하지만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노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사건을 현대인의 관점과는 달리 아주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을 반역한 인간이 처음 겪은 일이 벗은 것을 알고 수치를 느꼈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벌거벗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상태에 놓여졌다는 것이고 이런 실수가 벌어지는 것을 통해 홍수 심판 후 남겨진 경건한 후손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였지만 죄와 사망의 다스림을 받는 연약한 사람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아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노아의 실수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두 형제에게 알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굳이 가나안이 언급된 것을 통해 노아의 수치를 함 혼자 본것이라기 보다는 가나안과 함께 보았을 가능성이 더 커보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두 아들 셈과 야벳에게 알렸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때 사용된 단어는 단순히 말을 전하는 정도를 넘어 '선포하다, 선언하다, 누설하다, 배반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노아의 수치를 드러내는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아마도 노아의 노년에 삶이 평온한 상태에서 죽음을 앞둔 한 늙은이를 조롱하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는 고대 세계에서 자기 부모를 욕보이는 매우 심각한 죄를 범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노아의 두 아들인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않기 위해 뒷걸음으로 들어가 옷으로 수치를 가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노아가 술을 깬 후에 이 일을 알게 된 후 격노합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고대 근동 문화에 있어서 수치는 죽음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치를 드러내는 것은 저주받아 마땅한 행동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저주를 함이 아니라 그 아들 가나안에게 발설합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문제는 고대 근동 세계관을 통해 그 의미를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세계관에서는 조상들의 삶이 후대 사람들의 삶의 모본이 된다고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성격은 아들들의 성격을 예견합니다. 이것이 확장되어 부모의 영향 아래 미래 세대는 일반적으로 선이든 악이든 조상들과 같은 행동을 범하게 됨을 인정합니다. 이것을 더 확장하면 셈은 아브라함의 조상으로 후대 이스라엘의 모범이 되고, 가나안은 이스라엘의 최대 적이 되는 가나안의 모범이 됩니다.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함이 자기 아버지에게 무례를 보였기 때문에 저주는 함에게 합당한 응보로서 함의 아들에게 향하게 됩니다. 

 

 창세기 시대에 축복과 저주는 저주하는 사람이 임의로 결정하고 그 결정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의 축복과 저주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가나안을 저주한 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가나안이 받은 저주는 결국 가나안 당대 가나안을 향하지 않고 가나안의 미래 새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즉 노아의 저주는 가나안 족속을 향하고 있는데 이 저주가 가나안 족속에게 이루어지는 것은 함의 범죄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함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즉, 그들 자신의 범죄 때문에 그 저주가 자신들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은 노아가 술에 취한 이야기를 들으며 수치에 대한 생각에 잠겼을 겄입니다. 노아는 벌거벗음으로 부끄러운 상태를 스스로 자초했습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반역하여 부끄러운 상태를 지각한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대 근동 사회만이 아니라 고대 사회 대부분은 수치에 민감한 사회였습니다. 수치는 죽음보다 더한 형벌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입니다. 이런 수치 상태에 놓였던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수치를 덮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모세로부터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아가 술 취한 이야기를 들으며 노아의 부끄러움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에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노아의 벌거벗음을 본 함이 당연히 그 아버지의 수치를 덮을 것이라 기대하며 듣고 있는데 그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함을 통해 아버지의 수치를 들은 셈과 야벳이 아버지의 수치를 덮습니다. 술에서 깨어난 노아가 이 사실을 알고 노하여 함에게는 저주하고,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합니다. 이 저주와 축복은 아마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상황과 유비해 보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수치스러운 삶이었습니다. 세상으로 대변되는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수치를 드러내고 수치를 발판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공고히 다져갑니다. 이런 수치를 하나님께서 덮으셨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보았습니다. 수치스러운 노예로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찾아오셔서 수치를 덮으시고 이집트와 파라오를 심판하셔서 이스라엘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노아의 수치를 덮고 명예를 회복시킨 두 아들에게 복을 빌어 주는 노아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이스라엘은 공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수치를 덮은 분은 복을 빌어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복을 주기 위해 명예를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명예를 회복시켜 준 것도 놀라운 일인데 거기서 더 나아가 복을 주기 위해 하신 일이라는 사실은 이스라엘에게 감격 이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은 받을 그 어떤 자격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은 언약을 기억하셔서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행하셨습니다. 셈과 야벳은 노아의 아들로 아버지의 수치를 덮는 것은 마땅히 행할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수치를 덮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선조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셔서 수치를 덮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파라오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 명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아의 심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헌신과 충성을 다짐했을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노아의 술 취한 이야기를 통해 벌어진 상황이 납득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명예와 수치는 매우 핵심적인 가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수치를 덮으셨습니다. 죄로 인한 우리의 수치를 덮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명예를 주셨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수치를 들추며 수치로 위협하고 억압하고 압제합니다. 세상이 주는 명예가 수치를 덮을 수 있다고 유혹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명예는 하나님 앞에 수치스러운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수치는 하나님 앞에서 명예로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명예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한 날도 하나님께 받은 명예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명예를 지키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수치스럽게 만들어도, 눈에 보이는 세상의 성공과 번영이라는 명예로 유혹해도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노아는 수치를 덮은 아들을 위해 복을 빌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수치를 가리신 분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수치를 담당하신 분이십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명예를 구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명예를 추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는 믿음의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명예와 수치로 내 삶을 돌아본다면 나는 명예로운 삶을 살고 있나요?


2. 내가 다른 사람의 수치를 알게 되었을 때 이제까지 어떻게 반응 했는지를 돌아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3. 내가 걸어가는 삶의 방향이 세상의 명예를 추구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명예를 추구하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도 때때로 다른 사람의 실수와 수치를 쉽게 비판하고 드러내려 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오늘 셈과 야벳의 모습을 통해, 참된 명예는 사랑과 존중에서 온다는 것을 배웁니다. 주님께서 죄로 가득한 나의 수치를 덮으시고 나를 명예로운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제 안에 예수님의 긍휼과 지혜를 부어주셔서, 세상의 명예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예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다른 이들의 허물을 덮고 명예를 세워 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도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저의 연약함과 수치도 주님 앞에 숨기지 않고, 회개와 은혜로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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