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63 복의 통로로 부르심 받은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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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7.2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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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세기 12장 1-3절) 

 

묵상:

아브람이 살던 고대 근동의 세계에서 ‘복’은 마음의 평안이나 영적인 위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복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었고, 삶을 지탱하는 가장 실제적인 힘입다. 자손이 많다는 것, 가축이 번성하는 것, 땅이 비옥한 것,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모든 것이 복입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을 얻기 위해 경쟁했고, 복을 잃지 않기 위해 움켜쥐게 됩니다. 복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이었고, 타인과 공유할수록 줄어드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런 세계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며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 이 말씀은 단순한 축복의 확대가 아니라, 아브람의 존재 이유 자체를 새롭게 규정하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복의 종착지로 세우지 않으셨다. 복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복이 흘러가는 통로로 부르셨습니다. 너에게 주는 복은 네 삶 안에서 완결되지 않고, 너를 지나 더 멀리 흘러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왜 굳이 ‘한 사람’을 선택해 모든 족속을 축복하시려 했을까요? 왜 직접 모든 민족을 동시에 축복하지 않으셨을까요? 성경은 일관되게 하나님의 방식이 ‘통로를 세우는 방식’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한 사람을 부르시고, 그 한 사람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살리십니다. 이는 선택이 특권이 아니라 사명임을 드러냅니다. 아브람의 선택은 그를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그를 통해 더 많은 생명이 하나님의 은혜에 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애굽에서 탈출하여 시내산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놀라움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당대 가장 강대한 권련과 화려한 문화를 가졌던 애굽을 복의 통로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노예로 전락한 민족을 복으로 사용하신 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억하셔서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광야의 삶을 견뎌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우리의 신앙이 종종 불편해짐을 경험합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모세와 이스라엘도 불편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후손인 모세와 이스라엘을 통해 열방을 살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억합하고 착취한 대상을 향해서도 복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원수들도 함께 복을 누리도록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 복을 흘러가지 못하도록 자신들의 신학을 구축하였습니다.  마치 자신들은 선택을 받을 만한 이유와 근거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를 독차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복의 통로로서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한동안 사라졌습니다.

 

우리들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구하지만, 그 복이 나를 넘어 흘러가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는 머뭇거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내 삶을 안정시키는 데서 멈추기를 원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실패한 삶을 다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하게 창세기 12:3으르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은 머무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한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저장고가 아니라 강과 같다.” 강은 고여 있지 않고 흐를 때 생명을 살립니다. 고인 물은 결국 썩지만, 흐르는 물은 주변을 적십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은혜가 내 안에만 머물면 점점 무거워지고, 때로는 교만이 되거나 두려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누군가에게 흘러갈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프랜시스 아시시의 기도는 이 진리를 잘 보여줍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그는 ‘평화를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평화로 만들어 달라’고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도구’, 곧 통로로 사용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브람의 부르심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되, 그 복이 그를 통과해 흘러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을 얼마나 자주 ‘나의 안전’, ‘나의 만족’, ‘나의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붙잡고 있는가?. 그리고 그 복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갈 기회가 있을 때, 나는 얼마나 자주 그것을 막고 있는가?. 이 말씀은 나를 책망하기보다, 나를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너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아브람은 이 부르심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그의 삶은 이제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흘려보내시는 복의 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도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한 날이 주어졌습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 부름에 우리도 믿음으로 반응함으로 오늘 한 날의 삶이 복의 길로 살아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 이해 질문:

1. 하나님은 왜 아브람을 복의 ‘소유자’가 아니라 ‘통로’로 부르셨을까요?

2. “너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은 복의 주체가 누구임을 어떻게 드러냅니까?

 

묵상의 깊이를 더하는 질문:

1. 나는 하나님의 복을 제한된 자원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복이 흘러갈 때보다, 붙잡고 있을 때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적용 질문:

1.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이 흘려보내길 원하시는 복은 무엇입니까?

2. 이번 주, 의도적으로 누군가에게 흘려보낼 수 있는 은혜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기도

 하나님, 저를 복의 끝이 아니라 복의 길로 부르셔서 감사합니다. 제 삶에 주신 은혜가 제 안에 머물지 않고, 다른 이들의 삶으로 흘러가게 하소서. 붙잡으려는 마음 대신 내어주는 기쁨을 알게 하시고, 아브람처럼 순종의 첫걸음을 내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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