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105 지배의 사슬: 세상이 약속하는 평화의 실체(창세기 14:4 중심으로)

  • 관리자
  • 조회 6
  • 2026.09.19 22:26
  • 문서주소 - http://sungsanch.or.kr/bbs/board.php?bo_table=c_07&wr_id=579

본문: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니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창세기 14:1-12절) 

 

세상의 역사는 흔히 힘의 균형에 의해 유지되는 ‘불안한 평화’의 기록입니다. 본문 4절은 소돔을 포함한 가나안 다섯 왕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십이 년 동안 섬기다가” 제십삼 년에 배반했음을 기록합니다. 여기서 ‘섬기다’라는 표현은 자발적인 충성이 아니라, 거대 제국의 군사력 앞에 굴복하여 매년 막대한 조공을 바쳐야 했던 ‘굴욕적인 종속 관계’를 의미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평화란 대개 강자의 지배 아래에서 약자가 숨을 죽이고 있는 상태를 뜻할 때가 많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이 ‘섬김’(עָבַד, abad)은 훗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겪었던 종살이와 같은 단어입니다. 소돔 사람들은 비옥한 요단 들을 차지하고 앉아 에덴과 같은 풍요를 누린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실제로는 제국이 쳐 놓은 거대한 지배의 그물망 아래 갇혀 있었습니다. 풍요의 대가는 자유의 박탈이었습니다. 우리는 눈앞의 안락함을 얻기 위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시스템에 예속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거대 제국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주변 약소국들에게 평화를 강요합니다. 소돔 왕들은 12년 동안 그 억압을 견뎌냈으나, 결국 그 지배의 사슬을 끊어보려 배반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힘으로 사슬을 끊으려 했던 그들의 시도는 더 참혹한 전쟁과 약탈이라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내딛는 발걸음이 때로는 더 깊은 수렁으로 우리를 몰아넣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 ‘참된 자유’란 세상의 지배를 거부하고 나만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공을 요구하는 독재자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시는 사랑의 왕이십니다. 주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세상 제국의 그늘을 택했던 롯과 소돔의 선택은, 결국 더 강한 힘에 의해 짓밟히는 비극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서사는 늘 우리에게 “누구에겐가 줄을 서야 안전하다”고 속삭입니다. 강력한 재력, 영향력 있는 인맥, 혹은 거대 기업의 시스템 안에 편입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안전은 12년의 기간처럼 유한하며, 언제든 우리를 전리품으로 전락시킬 수 있는 위태로운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의 지배 논리를 하나님의 은혜 논리로 덮어버림으로써, 우리가 누구의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질문합니다.

 

이러한 지배의 관계는 우리를 ‘도구’로 전락시킵니다. 그돌라오멜에게 소돔은 단지 금과 은을 상납하는 창고에 불과했습니다. 세상은 당신의 인격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당신이 창출해내는 이익과 능력에만 주목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형상은 우리를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종노릇 하던 사슬을 끊어주시기 위해 친히 종의 형체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이 주제는 출애굽의 구원 드라마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세상 제국의 조공자가 되어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종살이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신분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누려야 할 평화는 힘의 균형이 만든 정전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됨으로 얻는 영혼의 샬롬입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본문은 오늘날 우리가 맺고 있는 수많은 ‘종속적 관계’를 직시하게 합니다. 빚의 사슬, 중독의 사슬, 사람의 인정을 갈구하는 자존감의 사슬 등 우리는 무언가에 12년 넘게 매여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돔 왕들처럼 내 힘으로 그것을 끊어보려 발버둥 치지만, 돌아오는 것은 더 큰 상처뿐일 때가 많습니다. 진정한 해방은 나의 배반(반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섬기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평안을 위해 주님보다 더 의지하고 상납하고 있는 세상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롯이 누렸던 소돔의 평화는 제국의 말굽 소리에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습니다. 세상이 약속하는 평화는 언제나 조건부이며 일시적입니다. 오직 주님의 날개 아래 거할 때만 우리는 세상의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세상의 지배 논리로부터 탈출하십시오. “세상의 힘이 나를 지켜준다”는 거짓 신화를 버리고, “오직 주님만이 나의 요새”이심을 고백하십시오. 우리가 세상에 바쳐왔던 열정과 시간과 마음을 이제 주님께로 돌리십시오. 주님의 통치 아래 거하는 자만이 진정한 자유를 얻고, 세상의 거친 풍랑 속에서도 평안히 거닐 수 있는 믿음의 담대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믿음의 대장부로 하루를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질문]

1. 소돔 왕들이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겨야 했던 현실은 오늘날 우리가 세상 시스템에 매여 사는 모습과 어떻게 닮아 있습니까?

2. 나는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며 '조공'을 바치고 있는 세상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적용 질문]

1. 내 삶에서 내 힘으로 끊어보려 했지만 도리어 더 큰 고통을 가져왔던 '잘못된 관계나 습관'은 무엇인가요?

2. 오늘 하루, 세상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기 위해 내가 선포해야 할 믿음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기도] 

참된 해방자 되신 주님, 세상의 화려한 풍요 속에 숨겨진 지배의 사슬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무언가에 매여 종노릇 하던 저의 비참한 자리를 떠나, 주님의 은혜의 품 안으로 달려가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이 주는 조건부 평화에 안주하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자유와 평강을 누리며 오늘 하루를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P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