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구글광고 등 삽입

마귀에게 물리는 이유 -22.2월 마지막 주

  • 관리자
  • 2022.03.02
마귀에게 물리는 이유
 
프리카에서 원숭이를 사냥할 때 즐겨 쓰는 방법이 있다.
입구가 좁은 병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 한 개를 집어넣고 끈으로 단단히 묶어
숲속의 나무에 매달아 놓는다.
그러면 원숭이가 바나나를 꺼내 먹기 위해 손을 병 속으로 집어넣고 바나나를 움켜잡는다.
바나나를 꺼내려고 원숭이는 안간힘을 쓰지만, 손이 빠져나오지 않는다.
움켜쥔 손만 펴면 손은 금방 나올텐데, 원숭이는 결코 바나나를 포기하지 않다가 결국 사람에게 잡히고 마는 것이다.
 
늘 우리사회에도 이런 원숭이와 같이 지내는 사람이 많다.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움켜쥐고 있다가 마침내 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지 못한 일로 신문과 방송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도 욕심에 사로잡혀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결국은 죄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 죄가 섞이지 않은 곳이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망라해 죄가 섞여 있다.
그것들이 이 사회의 도처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는 욕심과 관련되어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다.
개인이나 기업, 정부 안에 죄가 관련되면 병들어 버린다.
성도는 죄를 버려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세속적이고 죄악된 것을 포기함으로써 더 나은 가치를 얻고자 한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이었던 제자들을 향해 “나를 따라 오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다.
“따라 오라”는 무엇인가를 포기할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다.
성경이 “버려두고”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의미가 크다.
“버림”이란 단순한 도덕적 차원에서 마음을 비운다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한 거룩한 버림”을 의미한다.
영원하고도 참된 가치를 지니는 것들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프고 힘든 거룩한 버림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레이몬드 브라운 목사는 “개는 반드시 짖는다. 그리고 자기 범주에 들어오면 문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마귀에게 물리는가?
그것은 마귀에게 너무 가까이 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결박된 존재이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들이 이리저리 찢기고 물리는 이유는 그 자신이 사단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아직 버리지 않는 죄는 우리를 마귀의 밥이 되게 만든다.
오늘 당신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구글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