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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5 질서를 세우시는 하나님

  • 관리자
  • 3시간전

본문: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창세기 1장 14에서 19절)

 

오늘은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가지고 "질서를 세우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창조하신 세계를 어떻게 질서를 세워가시는 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우시고 사람을 위해 질서를 세워가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가 사람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확인하고 그 속에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발견할 수 있는 복 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넷째 날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내용은 광명체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 본문이 기록된 시대의 고대 근동 세계관에서는 하늘의 태양, 달, 별들의 광명체들이 신적인 존재로 숭배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큰 광명체, 작은 광명체로 언급하고 있지만 이것들이 지칭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큰 광명체는 태양일 것이고 작은 광명체는 달입니다. 태양과 달을 지칭하는 단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직접적으로 그 단어를 사용해서 기록하지 않고 광명체로 언급합니다. 그 이유는 태양이나 달은 광명체, 즉 피조물 이상의 어떤 존재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태양이나 달은 인간이 숭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피조물입니다. 사람이 태양이나 달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봉사하도록 태양과 달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더 확증하는 내용으로 이 광명체들이 하는 일에 대한 언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광명체가 하는 일은 낮과 밤을 나뉘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땅에 빛을 비추는 일입니다. 이 일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낮과 밤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빛이 비추이는 낮을 통해 사람이 일을 하게 되고, 밤에는 쉼을 누립니다. 이 구분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갑니다. 

 

그리고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는 일을 합니다. 징조는 표징, 표시로 기후와 때의 변화를 표시하는 것으로 절기나 기후를 예측할 수 있는 하늘의 변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으며 계절과 날과 한 해를 나누는 구분점을 제시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 광명체들이 하는 일들은 모두 인간의 삶, 특별히 땅을 경작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이 광명체들은 인간이 경작하고 살아가는 데 조력하며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인간이 경배할 대상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2절을 통해 설명했듯이 오늘 분문은 오늘날의 과학적 사고와 세계관을 투영하는 위험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 1장은 과학 참고서가 아닙니다. 과학 해설서도 아닙니다. 1차적으로는 창조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창조 세계가 전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창조는 기능을 작동하게 하는 것을 창조로 보았고 그 기능을 작동하게 하는 자가, 기능을 부여하는 자가 소유권을 가집니다. 즉 광명체들에게 기능을 부여하고 계신 하나님이 창조자가 되고 소유주가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성경이 1차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기능들은 이제 앞으로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창조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능들로 전부 사람을 위해 봉사하도록 정해졌습니다. 계속해서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의 창조된 모든 피조 세계는 사람을 위해, 사람에게 봉사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 당시 고대 근동 사람들, 아니 당시 모든 사회에 속한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당시의 고대 근동을 포함한 고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들을 위해 봉사하도록 지어졌으며, 그러므로 신들을 대리하는 지역의 통치자인 황제나 왕에게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황제나 왕이 선택한 귀족이나 신하들로 대변되는 주인에게 봉사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상식이고 현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이 모든 사상을 배격하고 신으로 오해한 피조물들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 대상들이 사람을 위해 지어졌고 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는 선언은 혁명적인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조물의 대리자라고 주장하는 지역의 황제나 왕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이고 자신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주장이었을 것입니다. 

 

이 창조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되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온 광야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떻게 들려졌을까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봉사하도록 창조된 피조물들을 신으로 섬기며, 그 피조물의 대리자가 신의 대리자라고 믿으며 봉사하고, 자신들의 노예됨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여 살아갔던 이집트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보내신 하나님을 통해 자신들이 섬겼던 신들이 하나님의 재앙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서 신의 대리자라고,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파라오가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다는 무능함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리자인 모세에게 이끌려 이집트 최고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고 갈라진 홍해 사이로 만들어진 길을 건너 광야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들려진 창조 이야기. 이 창조 이야기는 단지 신화가 아닌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확립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부름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대 전환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고대 세계는 강력한 피라미드 사회로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피라미드 사회는 아주 강력하지만 고대처럼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계급화된 피라미드 사회는 아닙니다. 왕을 정점으로 귀족들과 평민들과 하층민, 노예로 구성된 사회는 구조적인 착취를 바탕으로 높은 계층의 부류만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구조를 세계관이 뒷받침해주고 있어 그 틀을 깨뜨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이집트에서 400년 간의 삶, 대부분의 시간을 노예로 살았다는 것은 그 세계관에 녹아들어 적응하며 살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가장 궁핍한 방글라데시나 인도 하층민들은 행복 지수가 높다고 합니다. 그들을 지배하는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살기에 그렇습니다. 이렇듯 자신들의 삶을 구축하고 있는 세계관을 변혁한다는 것은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변혁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상의 변혁이 아닌 실제로 경험을 통해서 이 변혁을 이루어 가십니다. 눈에 보여줌으로 그 허상을 직면하게 하고 그 허상을 다 깨뜨림으로 세계관의 변혁을 시작하십니다. 광야에 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통해 이 세계관의 변혁 앞에 서게 됩니다. 믿기 어려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천천히 그러나 아주 세밀하게 간섭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신이시고. 하나님만이 창조주 되시고, 하나님이 조상에게 하신 약속, 즉,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이 놀라운 일을 시작하셨다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 변혁된 세계관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 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참 형상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대리 통치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들의 시대는 과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 사람들과 달리 광명체들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 사람들과 같이 피조물들을 신으로 섬기며 봉사하며 사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세우시고 창조하신 모든 피조 세계를 대리 통치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시대의 삶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물건이나 시스템 속에 함몰되어 그런 것들에게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는 한없이 비참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계급화된 피라미드 구조는 아닐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더 견고한 피라미드 구조에 갇혀 착취당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피라미드의 한 층을 올라가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적대시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합니다. 참된 목표와 방향을 잃어버리고 수단이 목적이 되고 눈앞의 이익이 방향이 되어 길을 잃어버린 채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에 오늘 본문은 경종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다시금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스리게 하신 세계는 피라미드 구조의 약육강식의 착취 시스템의 세계가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받고 억압과 착취가 아닌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모두 평등하고 사랑이 넘쳐 나는 공동체를 세워가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성경적 세계관을 확립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사람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방향으로 내 삶의 영역을 다스려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채우시고 질서를 세우는 곳에 선함이 있습니다. 보기 좋고 아름답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채움과 질서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함께 그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한 날도 이러한 복된 삶을 누리며, 나를 통해 내 삶의 영역이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통치가 실현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오늘 나의 삶을 지배하는 세계관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변혁되어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까? 

 

2. 오늘 본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변화를 시작하신다면 어떤 영역에서부터 시작하실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3. 내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라면 내 삶의 영역을 어떻게 다스리시겠습니까? 나의 다스림으로 내 영역 안에 있는 사람이나 피조물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모든 것들로 우리들에게 유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피조 세계나 사람들이 만든 시스템에 다스림을 받는 이 왜곡된 세상에서 참된 삶의 의미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어가실 일들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도 살아가게 하옵소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시고 나의 다스림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아름다우신 계획과 뜻을 성취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회복케 하셨사오니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참되고 복된 삶을 누리며 감사하는 한 날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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