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3장 1-3절)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고대 근동 세계관의 이해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살펴보아야 할 것은 종주권 조약입니다. 이 조약은 강대국(종주)과 약소국(봉신)간에 체결된 조약으로 속국이 종주국에 충성을 맹세하고 보호를 받는 대신 일정한 의무를 수행하는 형식입니다. 이러한 종주권 조약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종주국 왕이 자신을 소개하는 서론,
2. 종주국 왕이 속국에 대해 과거에 배푼 은혜나 도움을 설명하는 역사적 서론,
3. 속국이 따라야 할 법과 의무가 명시되는 조약과 의무,
4. 조약 문서를 공식적 장소에 보관하고 정기적으로 낭독함을 명시한 문서 보관과 정기적 낭독,
5. 조약을 지키면 받는 복과 어길 경우 받는 저주를 명시한 축복과 저주,
6. 신들과 중요한 증인들이 조약을 보증하는 신들 및 증인의 구조.
중요한 것은 언약의 구조나 형식이 아니라 언약이 어떻게 유지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언약이 유지되는 조건은 두 당사자가 언약을 잘 이행할 때 유지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종주국의 왕입니다. 실제적으로 언약이 유지되는 것은 종주국 왕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종주국의 왕에 의해 그 언약의 성격과 실행이 규정되기 때문입니다. 절대 권력자인 종주국의 왕이 그 언약을 유지할 마음이 있느냐가 언약 유지의 핵심이 됩니다. 왕의 결정이 언약 유지에 가장 결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를 가지고 구약 성경을 살펴보면 종주권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과 봉신이 되는 사람, 혹은 이스라엘 나라가 맺은 언약이 조약의 구조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 언약의 유지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신실하심을 통해 언약이 유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창세기 2장을 살펴보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종주와 봉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그를 섬길 때 피조물을 다스리는 대리 통치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향한 언약적 충성과 헌신이 요구됩니다. 사람의 생명과 죽음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성실함에 달려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창세기 3장을 통해 언약적 헌신과 충성을 요구받는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의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것입니다.
3장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동물 중 뱀의 등장으로 시작합니다. 3장의 기록을 보면 뱀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짐승입니다. 그러나 뱀을 묘사하는 '간교한(이룸)' 이란 단어를 통해 뱀은 경계할 동물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보아야합니다. 물론 '이룸(간교한)'은 중립적인 단어이지만 뱀이 첫 사람에게 한 행동을 통해서 부정적인 사용이 가능함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으로 사건이 시작됩니다. 본문에서는 뱀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뱀이 말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뱀이 하는 말을 통해 뱀의 목적이 분명하게 첫 사람이 하나님의 향한 언약적 충성과 헌신을 파괴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뱀은 첫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향한 신뢰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유도해 갑니다. 이런 이유에서 뱀이 여자를 선택한 것은 여자가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직접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뱀의 선택은 여자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왜곡함으로 혼란을 주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뱀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말하는 것으로 교묘하게 대치함으로 금지 명령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유도합니다.
뱀의 첫 번째 발언은 원문의 의도를 보면 충격과 놀라움을 표현한 것에 가깝습니다. 뱀은 하나님이 금지하신 것을 심하게 과장하며 매우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뱀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모든 나무 열매를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왜곡된 주장을 합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구절은 '모든'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첫 사람들을 향한 언약적 사랑과 성실함을 의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뱀은 이렇게 주장함으로 여자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악의를 가지고 계시며, 비열하고, 집착적으로 질투하며, 자기 방어적이라는 인상을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 말 하시더냐?"라는 미묘한 의문을 추가함으로 하나님의 동기 또한 의심하게 만듭니다. 뱀이 첫 사람에게 하고 싶은 주장은 매우 확고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선하지 않다. 알고 보면 선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것이 뱀이 첫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하나입니다. 모든 나무의 열매가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심지어 생명 나무의 열매도 금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뱀이 첫 사람에게 찾아오기 전까지 하나님과 사람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사랑의 교제를 누리며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 만족하며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에덴동산에 그 어떤 불결이나 더러움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지키며 사랑의 교제를 누렸을 것입니다. 이 복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하는 것, 이것이 가능하다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이야기를 들음으로 동일한 질문 앞에 서게됩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인가?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닌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땅은 우리에게 선하고 좋은 땅인가? 첫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가장 선하고 아름답고 완벽한 상태에서도 뱀의 왜곡된 인식이 하나님과 첫 사람의 관계를 흔들어 놓습니다. 이와같이 이집트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권능으로 그들을 구원하셨음에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하고 '우리로 죽게 하려고 불러내었다고' '이집트에서 노예였지만 먹을 것은 풍성했다고' 끊임없는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왜곡된 인식은 모든 세대, 모든 지역을 망라하는 공격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언약적 사랑과 성실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심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흔들고 의심하게 합니다.
우리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첫 사람의 의심의 시작은 가장 완벽한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입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안전하고 도저히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를 흔들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그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소망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 소망은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언약의 유지가 종주국의 왕에게 전권이 달려있는 것처럼 우리의 소망도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이 소망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 성경입니다. 인간의 실수와 반역으로 점철된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성실하셨고 언약적 사랑으로 우리에게 임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일 때 그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죽게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으셨고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고 추적하시며 붙잡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께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한 날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끊으려고 달려들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선하신가?'라는 의심을 우리에게 심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때마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늘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통해, 나의 삶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내 결단, 내 의지로 하나님을 붙잡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실족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감사할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나를 신뢰하는 삶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2. 하나님은 나에게 선한 분이신가요?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요?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에게 가장 선하고 아름답고 복 된 것들을 주셨음에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내 의지와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어떤 것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바울의 고백이 오늘 나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주어진 한 날이 의심 속에 방황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나아가는 복 된 날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