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세기 3장 18-21절)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은 하나님이 조각가가 되어 흙으로 조형물을 만들었다는 관찰 기록이 아닙니다. '흙'이라는 단어는 '먼지', '티끌'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을 다루고 있는 사항으로 인간의 본질은 먼지와 티끌과 같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런 먼지나 티끌과 같은 사람이 사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먼지'나 '티끌'에서 취하여 거기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숨이 먼지나 티끌에서 지어진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숨이 있기에 살아있는 육체가 되었고 다른 육체와 달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하나님을 반역한 그 결과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숨이 떠나 다시 '먼지'나 '티끌'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존엄하고 존귀한 존재로 지으셨으나 사람은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그 지위를 스스로 버리고 무가치한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본질적인 의미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람이 '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의 기록이 여기서 마무리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기록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는 하나님의 심판 이후에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불렀으며 하와라는 이름은 산자의 어머니에서 유래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기록을 통해 아담과 하와는 가정을 이루었으며 하나님께 반역했음에도 삶을 이어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산자의 어머니라는 의미를 통해 하와를 통해 인류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아담과 하와는 모든 인류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하나님께서 보기 좋은 상태에서 모든 피조세계에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이 이루어지고, 사람을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세우시고, 피조 세계를 아름답게 가꾸고 보살피는 세상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반역으로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들은 죄와 사망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 인해 땅도 저주를 받고 온 세상이 신음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반역한 뱀과 여자와 남자에 대해 심판하시고 사람에 대한 창조하실 때 가지셨던 계획과 목표를 취소하거나 변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그 안식에 초대하셔서 사람과 함께 안식을 누리며 사람을 통한 하나님의 다스림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반역으로 하나님께서는 다시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친히 안식을 깨시고 일하셔서 죄와 사망의 통치를 끝내시고 다시 온 세상이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복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일하시기 시작하신 것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는 기록은 하나님께서 반역한 사람을 위해 다시 일하시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가죽 옷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것입니다. 가죽 옷을 위해 동물이 죽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가죽 옷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이 벌거벗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원래 벌거벗었으나 옷이 필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벌거벗은 부끄러움, 수치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벌거벗음에 대해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끼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뱀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반역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의 밝아져 더 나은 선과 더 아름다운 지혜를 얻은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 밝아졌고 부끄러움에 밝아졌고 수치에 밝아진 것입니다. 사람은 이 부끄러움과 수치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을 사용하였으나 무화과나무 잎은 임시방편이지 부끄러움과 수치를 계속해서 가릴 수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동물을 죽이십니다. 반드시 죽어야 할 대상은 반역한 사람인데 사람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가리기 위해 동물을 죽이십니다. 동물이 피 흘리고 죽어 가죽옷을 남겼고, 그 옷으로 사람의 죄를 가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을 듣게 된 모세의 인도하에 광야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라오의 압제를 뒤로하고 나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은 열번 째 재앙이었던 장자의 죽음이었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장자가 죽었습니다. 파라오의 장자로부터 미천한 노예의 장자까지 모든 집에 죽음의 애곡이 있었습니다. 그 죽음의 날에 죽음이 넘어간 지역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곳.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집안에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죽음의 천사가 문설주에 발린 피를 보고 그 집을 넘어갔습니다. 이것을 기념한 것이 유월절입니다. 죽음이 다스리는 곳에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동물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사람 대신 죽은 양! 이것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사람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동물을 죽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양을 죽여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구하셨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장자의 죽음은 그 집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모든 장자가 죽었다면 모두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반역한 파라오에 속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었던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자신도 죽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양을 대신 죽이심으로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복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온 땅의 주인이 파라오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온 땅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땅을 선물로 주신다고 하시며 그 땅을 하나님을 대리해서 다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첫 사람의 실패로 하나님 나라가 좌초되어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언약의 백성 삼으셔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가 성취되었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부끄러움과 수치를 가린 것이나 가죽옷으로 가린 것은 임시방편입니다. 죽음의 천사가 양의 피를 보고 죽음을 건너간 것도 임시적입니다. 사람은 죽습니다. 수치와 부끄러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반역한 결과는 이렇게 끔찍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셔서 이 죄와 사망이 사람 위에 군림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끝내고자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죄와 사망에 대한 완전하고 완벽한 해결을 이루셨습니다. 동물의 피가 아닌 아들의 피로, 동물의 죽음을 넘어 아들이 죽음으로 사람이 온전한 구원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에서 다시금 소망을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어 죄와 사망의 통치 아래 부끄러움과 수치 속에서 살다가 멸망을 당하는 것이 마땅한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의 삶도 결국 죽음이 가까워지는 삶입니다. 하루하루가 결국 죽음에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소망이 없다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마지막이라면 인간의 삶은 허무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일하셔서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죽음을 이기고 우리에게 그 이김에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주어진 하루도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 소망을 누릴 수 있으며 허무를 극복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하루가 낭비되는 허무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내 삶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고 나를 통해 이 땅을 다스려 죄와 사망의 통치가 나를 주장하게 하지 못하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인간이 삶이 이 땅이 전부이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2. 사람에게 가죽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위해서도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실까요?
3. 삶 속에서 내 부끄러움과 수치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는 소망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인간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안식의 상태에서 사람을 위해 다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구원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아들을 보내사 죄와 사망의 통치를 끝내고 하나님의 통치를 우리 안에서 시작하시고 이루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한 날, 죄와 사망의 통치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의의 병기로 드리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드러내는 복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