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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32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 관리자
  • 4시간전

본문: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창세기 4장 8-15절)

 

성경에서는 이름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소유하고 주인 됨을 의미합니다. 가인은 아마도 카나(창조하다, 얻다)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후 인간 스스로가 무엇을 이루려는 시도와 소유하려는 시도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벨은 전도서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로 '짧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실제도 아벨은 여인의 후손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가인에 의해 죽임 당함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였고 '허무'한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벨의 허무한 죽음. 이는 가인이 자기 눈에 보기 좋지 않은 상황을 자기 눈에 보기 좋게 바꾸려는 시도였습니다. 아벨만 없으면 모든 것이 자기가 원하는 상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은 아벨에게 말합니다. 가인의 말을 생략하고 있지만 공동 번역은 '들로 가자'고 꾀어라고 기록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들에서 쳐 죽입니다. 하나님께 반역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벗어나 죄와 사망의 다스림을 받는 현실이 아주 극적으로 대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지만 가인은 죄를 다스리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이러한 실패는 연속될 것이기에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삶에서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 시기와 질투, 다툼이 일상이 되는 세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가인이 원하는 상황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범죄한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고 물으셨던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범죄한 가인에게 찾아오셔서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가인은 자신의 한 일을 하나님께 숨기며 대답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자신은 아벨에 대해 무관하고 아벨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열매를 먹음으로 더 나은 선을 알기를 원했지만 결국 그들이 알게 된 것은 죄와 악뿐이 없었음을 아이러니를 통해 강조하고 있듯이, 가인이 자신의 범죄를 회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내가 알지 못합니다.'라고 부인하지만 이 말로 사람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으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반역으로 죄가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서로 책임을 전가합니다. 변명을 하였지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합니다. 그러나 가인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넘어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러한 죄의 성장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계속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반복되어 사용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형제,아우'라는 단어가 일곱 번 사용됩니다. 이러한 반복을 통해 아벨은 가인의 형제요 아우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인이 하나님께 반문했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라는 질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아벨을 지키는 자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지키다'라는 단어는 목동이 양을 지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로 '내가 내 동생의 목자입니까?'라고 의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종종 구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으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시 121:4~8절). 민수기에 기록된 모세의 기도에 나타난 핵심적인 내용은 여호와가 그들을 복 주시고 지키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뱀의 후손은 물리적인 뱀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뱀의 후손은 여인의 후손을 죽이려는 세력, 여인의 후손의 사역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저항하는 모든 것을 총칭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여인의 후손이라고 기대했던 가인이 뱀의 후손이 되어 여인의 후손인 아벨을 죽인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반역하고 저항하는 삶이 뱀이 유혹하는 자리에 있는 삶입니다. 그리고 뱀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 길이 참된 자유요, 참된 선이라고 끊임없이 유혹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선택과 결정을 하는 순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욕심을 채우고 죄와 사망의 통치를 실현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는 뱀의 편에 선 것입니다.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는 하나님의 질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라는 답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질문들 앞에 모세는 자신 경험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형제들을 지키기 위해 이집트와 맞설 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광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광야 생활 40년을 보내고 하나님께서 형제들을 지키라고 보내실 때 모세는 저항합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에 이집트로 가서 형제들을 지키며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자신이 형제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형제들을 지키고 계심을 이집트와의 대결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여인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향한 파라오의 억압과 착취와 무자비한 공격은 뱀의 후손으로 보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의 공격에 힘없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지키셨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 하셨습니다. 여인의 후손을 통해 일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사람을 사랑하셔서 회복케 하시려는 목표는 뱀과 뱀의 후손들로 나타나는 사람들에 의해 무력화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세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들려주시고자 하시는 메시지를 들었을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지키겠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 다시는 뱀의 공격에 너희를 내어주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통치를 받으며 뱀의 유혹에 속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신 다스림 안에서 여인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를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부르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형제를 방치하거나 욕망으로 형제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자리에서 이제 형제를 지키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힘이 있어 형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지키셨듯이 나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키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를 향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살인은 자신의 형제를 살인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와 악으로 인한 시기와 질투를 보지 못하고 형제를 향해 미움으로 가득해진다면 그 사회는 죽음이 삶에 드리우는 사회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존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희생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살인과 죽음이 난무하는 사회가 아닌 형제를 사랑하는 사회로 이끌어가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한 날도 시기와 질투, 미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어둠과 혼란으로 물들어가게 하는 삶이 아닌,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형제를 지키시며 보호하시는 빛 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형제를 사랑하며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세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믿음의 공동체가 세상에 소금과 빛으로 드러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나는 나의 주변 사람들을 돌보는 책임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2.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통해 형제, 자매들을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실 수 있으십니까? 

 

3. 내 삶의 선택과 결정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결정과 선택으로 내 삶의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내 욕심을 채우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달려가고 싶은 연약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내 이웃의 삶에 무관심하고 방치하며 내 유익과 편안함을 확대하기에 빨랐던 어리석음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내가 내 주위의 형제, 자매들을 지키고 보호할 힘과 능력이 없지만 나를 사용하셔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내 삶의 자리를 내어드릴 수 있는 용기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 선택과 결정을 통해 죄와 사망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생명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강화되는 소금과 빛으로의 삶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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