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창세기 12:10-20절)
하나님의 강력한 재앙의 개입 이후, 사건의 전개는 매우 기묘하고 당혹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애굽의 절대 권력자이자 신격화된 존재였던 바로가 도리어 아브람을 불러 호되게 꾸짖으며 문책하기 시작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세상의 왕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호통치며 가르치는 이 장면은, 신앙인의 삶에 깊은 영적 수치심을 안겨줌과 동시에 가장 강렬한 영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역설적인 순간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 아브람이 이방인에게 도덕적 책망과 훈계를 듣는 이 뼈아픈 기록은 우리를 깊은 성찰로 인도합니다.
바로의 추궁 섞인 질문에는 ‘어찌하여’(מָה, 마)라는 히브리어 의문사가 여러 번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람의 기만적인 행동이 불신자의 보편적인 상식과 도덕률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이고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날카롭게 고발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바로의 일방적인 꾸짖음 앞에서 아브람이 그 어떤 변명이나 대답도 내놓지 못하고 침묵했음을 기록하는데, 이 침묵은 자신의 불신앙과 비겁함에 대한 뼈아픈 시인이자 겸허한 수용의 태도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굳어진 마음과 잠든 양심을 깨우기 위해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를 매서운 채찍으로 빌려 쓰시기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 세계관에서 바로는 태양신의 아들이자 지상의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제국의 신이 이름 없는 이방 유목민의 신인 여호와의 재앙 앞에 벌벌 떨며 굴복하여 사래를 돌려보내는 것은, 참된 영적 세계의 권위와 주권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의 입을 빌려 아브람에게 “너는 과연 누구이며, 네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라는 정체성의 질문을 던지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준엄한 대언자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광야의 고된 여정 중에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수백 년간 억압하던 애굽의 절대 권력자조차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서 통제받는 도구에 불과함을 보며 거룩한 담대함을 얻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 가운데서 정직하지 못할 때 겪게 되는 영적 수치가 얼마나 뼈아픈 것인지도 깊이 학습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조상의 쓰라린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보다 월등히 높은 도덕적 기준과 정직의 가치를 수호해야 함을 삶의 원리로 인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가 결코 지리적, 민족적 경계에 갇히지 않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임을 다시 한번 입증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오직 언약 백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의 열방과 통치자들 전체를 포괄하고 다스리시는 거대한 스케일입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이방의 왕을 당신의 거룩한 구속사의 도구로 삼아 약속의 씨앗인 사래를 보호하셨으며, 이는 세상의 모든 정치와 권력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종속적인 도구임을 선언하는 개혁주의적 세계관의 견고한 기초가 됩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비판의 목소리에 겸손히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며 빛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이 교회의 도덕성을 걱정하고 비난하는 이 시대의 아픔은 아브람이 바로 앞에서 겪었던 그 참담한 수치와 매우 닮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유혹과 가치에 매몰되어 신앙적 양심과 정직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입술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따갑게 책망하시고 비뚤어진 길을 바로잡으려 하십니다.
성경을 기록한 저자의 통찰을 따라 우리는 이 문단에서 ‘신자의 영성과 윤리’의 괴리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게 됩니다. 아브람은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선구자였으나, 실제 삶의 윤리적 수준은 이방인 바로보다 훨씬 낮아지고 말았습니다.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고백하는 신앙의 고귀함은 당신의 매일의 삶에서 드러나는 정직함과 일치하고 있습니까? 세상이 당신을 향해 "어찌하여 믿는 자가 이렇게 행하였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얼굴로 대답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필요하다면 길가의 돌들을 들어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고, 이방의 불신자 왕을 들어서도 당신의 거룩한 뜻을 선포하실 수 있는 분이다"라는 말처럼 하나님의 일하시는 도구에는 그 어떤 제한도 없습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마땅히 행할 순종의 의무를 저버릴 때,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무시하거나 두려워했던 경로를 통해 우리를 흔드시고 깨우십니다. 바로가 쏟아낸 분노 섞인 책망은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징계인 동시에, 그가 다시 거룩한 언약의 자부심을 회복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아픈 자비의 초대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수치스러운 장면은 훗날 이방 통치자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묵상하게 합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실제적인 죄와 기만으로 인해 이방 통치자로부터 정당하고 마땅한 꾸짖음을 들었으나, 우리 주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겁한 빌라도 앞에서 침묵하시며 우리의 모든 수치와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고난받으셨습니다. 아브람이 당한 수치는 결국 우리를 대신해 모든 수치를 당하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신 그리스도를 더욱 간절히 갈망하게 만드는 소망의 빛이 됩니다.
오늘 우리의 주변 환경이나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세밀하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경고음이 있지는 않습니까? 때로 가슴 아픈 사람들의 질책이나 환경의 압박이 당신을 괴롭힐 때, 그것을 단순한 감정적 비난으로 치부하지 말고 당신의 영적 상태를 비추어 보는 거룩한 거울로 삼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금 정결하고 흠 없는 그릇으로 빚으시기 위해, 세상이라는 투박한 도구를 빌려 당신의 삶을 조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 매서운 꾸짖음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발견하고 겸손히 엎드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한 날, 나를 찾아오시는 주님의 음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할 수 있는 복된 한 날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 질문]
이방 왕 바로의 날카로운 꾸짖음이 아브람의 잠든 양심과 신앙적 자존감에 어떤 충격과 영적 각성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세상 사람들을 통해 나의 잘못을 책망하시거나 깨우쳐 주셨던 구체적인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보십시오.
[적용 질문]
나의 정직하지 못한 언행이나 삶의 무질서함 때문에, 내가 믿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거나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된 적은 없나요?
세상 불신자들에게도 기꺼이 존경받을 만한 수준의 믿음의 윤리와 성실한 삶의 태도를 긴급히 회복해야 할 영역은 내 삶의 어디입니까?
[묵상 기도]
거룩하신 주님, 저의 부끄러운 삶의 모습들이 세상의 지탄을 받거나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늘 깨어 정직하게 행하는 영성을 허락하소서. 때로 세상의 아픈 소리를 통해 저를 연단하시고 다시금 거룩한 언약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신비로운 섭리에 겸손히 귀 기울이며 순복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