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13:1-4)
아브람이 애굽을 떠날 때, 성경은 그가 혼자가 아니었음을 의도적으로 기록합니다. 아내 사래와 롯, 그리고 모든 소유가 그와 함께 네겝으로 올라갑니다. 이는 아브람의 범죄와 기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가 잃어버릴 뻔한 모든 관계와 언약적 자산을 고스란히 보존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수치 속에서 뒷걸음질 칠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뒤를 따르며 우리가 떨어뜨린 은혜의 파편들을 주워 담으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1절의 "함께(‘immô)"라는 짧은 전치사는 아브람의 애굽 행적을 비추어 볼 때 매우 경이로운 단어입니다. 그는 아내를 누이라 속이며 관계를 파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재앙을 통해 사래를 돌려보내심으로 그 일행을 재결합시키셨습니다. 롯이 여전히 그와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아브람의 실수가 장차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할 가문의 씨를 말리지 못했음을 시사합니다. 회복은 나 혼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묶어주신 언약 공동체가 함께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당대 가부장 중심 사회에서 가장의 실수는 온 가문의 멸절을 의미했습니다. 아브람이 바로의 궁에 아내를 들여보낸 행위는 가문의 명예와 존속을 스스로 포기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방, 세상을 대표하는 왕 바로가 아브람에게 어떠한 보복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보내주었다는 것은, 하늘의 왕이신 여호와께서 지상의 왕에게 직접 '신적 판결'을 내리셨음을 의미합니다. 아브람 일행의 안전한 귀환은 고대 근동의 법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치외법권적 통치의 결과였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신앙으로 인해 40년을 방황했지만, 하나님은 성막과 구름 기둥으로 늘 그들 '가운데' 함께하셨습니다. 아브람이 모든 소유와 식솔을 이끌고 올라오는 장면은, 광야 세대에게 "너희의 불순종보다 하나님의 동행하시려는 열심이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들은 조상의 귀환을 보며, 자신들의 광야 길 역시 결코 버려진 길이 아닌 하나님의 동행 아래 있는 길임을 신뢰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리더의 도덕적 실패 앞에 냉혹한 판단을 내리곤 합니다. 아브람은 분명 비난받아 마땅한 리더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끌어내리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가 다시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보존해 주셨습니다. 현대의 성도들 역시 자신의 실수로 인해 가정이 흔들리거나 공동체에 누를 끼쳤을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다시 '올라갈' 때까지 우리가 맡았던 사명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주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애굽의 비옥한 나일강을 떠나 처음 도착한 곳은 거친 땅 '네겝(Negev)'이었습니다. 이는 본문을 대하는 청중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풍요로운 불신앙의 땅과 척박한 믿음의 땅 중 어디를 택할 것인가? 아브람은 이제 물이 풍부한 애굽의 안락함을 뒤로하고, 오직 하늘의 비만을 기다려야 하는 네겝으로 들어섭니다. 회복의 첫 단계는 화려한 세상적 대안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주권 없이는 살 수 없는 광야의 실존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조차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도리어 우리가 돌아올 길을 닦아놓고 기다리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브람의 네겝행은 그가 길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닦아놓으신 은혜의 길 위로 다시 발을 올린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회복할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견인'만이 우리를 다시 약속의 지경으로 이끕니다.
아브람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동행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신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절정을 이룹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을 때에도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로 먼저 가셔서 그들을 기다리셨습니다. 아브람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네겝으로 이끄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 죄의 애굽까지 찾아오셔서 우리를 손잡고 하늘 보좌로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미리 보여주고 계십니다.
성경의 틀 안에서 13장 1절은 창세기 1장의 '창조'와 출애굽기의 '구원'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무질서(애굽의 거짓)에서 질서(네겝의 순종)로 돌아오는 과정은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과 같습니다. 또한 아브람이 '롯'과 함께 올라오는 설정은, 이후 소돔과 고무라 사건을 거쳐 모압과 암몬 족속의 기원까지 이어지는 정경적 서사의 중요한 복선이 되며, 하나님의 언약이 주변 열방으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실패가 우리을 고립시키는 것 같을 때, 곁에 있는 동역자들과 우리에게 여전히 허락된 소명들을 보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여전히 신뢰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새롭고 복된 날이 주어졌습니다. 이 날 수치를 뚫고 네겝으로 올라가는 아브람의 발걸음 뒤에 서 계신 하나님의 미소를 기억하며, 오늘도 당당히 언약의 행진을 이어가는 믿음의 용기 가득한 복된 날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 질문]
1] 아브람이 애굽에서 얻은 재물과 가족을 그대로 유지하며 나올 수 있었던 것이 그의 지혜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일방적인 보호 때문입니까? '함께'라는 단어에 담긴 은혜의 무게를 묵상해 보십시오.
2] 왜 하나님은 아브람을 곧장 벧엘로 보내지 않으시고 거친 광야인 '네겝'을 통과하게 하셨을까요? 회복의 과정에서 광야가 주는 영적 유익은 무엇입니까?
[적용 질문]
1] 나의 잘못으로 인해 관계가 깨어지거나 사명을 놓칠 뻔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보존해 주셨던 경험이 있습니까? 그때 느꼈던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2]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비록 네겝과 같이 척박할지라도, 세상의 애굽보다 주님과 함께하는 이 자리가 더 복됨을 고백할 수 있습니까? 오늘 내가 기꺼이 포기해야 할 '애굽의 안락함'은 무엇입니까?
[묵상 기도]
우리의 동행자 되시는 주님, 나의 허물과 불신앙으로 인해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어버릴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나를 붙드시고 내게 허락하신 언약의 유산들을 보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떨구고 수치 속에 걸을 때에도 주님은 나보다 앞서 길을 닦으시고, 나보다 뒤에서 나를 보호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이제 눈에 보이는 안락한 애굽을 미련 없이 떠나, 비록 거칠고 메마를지라도 주님의 임재가 있는 네겝으로 당당히 발을 내딛게 하여 주옵소서. 내 곁에 두신 동역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주님이 약속하신 벧엘을 향해 올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임마누엘 주님의 사랑만을 의지하며 걷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