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13:1-4)
아브람의 발걸음은 이제 나일강의 비옥한 삼각주를 등지고 척박한 가나안 산지를 향해 '역주행'하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은 풍요에서 결핍으로, 문명에서 광야로의 비합리적인 후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세계관에서 이 역행은 죽음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돌이키는 '회심의 행진'입니다. 아브람은 눈에 보이는 양식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 더 실제적인 생명임을 깨닫고, 세상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중심으로 자신의 좌표를 옮기고 있습니다.
3절의 "네겝에서부터 벧엘까지 이동하여"라는 구절은 단순한 여정의 기록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동하여(Wayyēlek lĕmassā‘āyw)'는 '자신의 경로를 따라 점진적으로 나아갔음'을 의미합니다. 애굽으로 내려갈 때는 기근에 쫓겨 급히 내려갔으나, 돌아오는 길은 차근차근 하나님의 궤도를 밟아 올라가는 인내의 과정입니다. 회복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마술이 아니라, 매일의 발걸음을 다시 주님께 맞추는 성실한 순종의 축적임을 본문은 증언합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그 지역을 통치하는 신의 주권 아래로 들어감을 의미했습니다. 아브람이 애굽의 강력한 신들의 영향력을 벗어나 다시 가나안의 제단으로 돌아온 것은, 온 천하에 여호와만이 유일한 통치자이심을 선포하는 신앙적 이주였습니다. 그는 당시 제국들이 닦아놓은 정복의 길이 아닌, 하나님이 명령하신 '언약의 길'을 따라 걷는 나그네의 길을 택했습니다.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브람의 이 점진적인 이동은 광야 행진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따라 진을 쳤다 걷기를 반복하며, 목적지보다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조상 아브람이 네겝을 지나 벧엘로 향했던 그 정교한 걸음걸이는, 광야 세대에게 속도가 아닌 방향이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거룩한 이정표였습니다.
빨리 성과를 내고 부를 축적하는 것이 미덕인 현대 사회에서, 아브람의 역주행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애굽의 화려한 성과를 포기하지 못한 채 벧엘의 은혜를 구하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복은 내가 의지하던 세상의 자원들을 하나씩 뒤로하고, 오직 주님만 계신 광야의 자리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느린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 쿠루빌라의 통찰처럼, 본문은 청중을 '과거의 장막 터'로 초대합니다. 아브람이 다시 장막을 친 것은 이 땅에 정착하여 주인 행세를 하지 않겠다는 나그네 의식의 발로입니다. 그는 이제 애굽에서 얻은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도 여전히 장막에 거합니다. 이는 물질이 더 이상 그의 주인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유업이심을 보여주는 문단 신학적 핵심 메시지입니다.
팡세의 저자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브람은 애굽의 재물로 그 공간을 채우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제 벧엘의 빈 들판에서 그 공간을 하나님의 임재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것으로 배부른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습니다. 벧엘의 결핍은 하나님의 충만을 경험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입니다.
아브람의 상행(上行)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은 곳으로 역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행(下行)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풍요를 뒤로하고 우리라는 결핍의 장소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를 위해 '역주행'하셨기에, 우리 또한 수치를 뚫고 주님께로 올라갈 용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성경적 세계관에서 아브람이 벧엘로 돌아와 제단을 찾는 과정은 창조 7일째의 '안식'과 맥을 같이 합니다. 애굽에서의 분주한 생존 투쟁을 멈추고 창조주의 품 안으로 돌아와 안식하는 것입니다. 이는 계시록에서 성도들이 세상 바벨론을 떠나 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종말론적 승리의 여정과도 연결되며, 성경 전체가 지향하는 '회복의 귀환' 모델을 제시합니다.
세상의 화려한 나일강을 뒤로하고 척박한 벧엘로 향하는 발걸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곳은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없으나 주님의 음성이 선명히 들리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주어졌습니다. 이 복된날 세상의 풍요가 주는 소음에서 벗어나, 우리의 영혼이 가장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그 벧엘의 장막으로 나아가는 복된 날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 질문]
1] 아브람이 애굽의 풍요를 뒤로하고 다시 척박한 가나안 산지로 돌아온 결정에 담긴 '신앙적 가치'는 무엇입니까?
2] '네겝에서 벧엘까지' 점진적으로 이동한 아브람의 모습에서, 성급한 성과보다 '과정의 순종'을 중요시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읽을 수 있습니까?
[적용 질문]
1]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기꺼이 포기하거나 '역행'해야 할 세상의 안락함은 무엇입니까?
2] 오늘 당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온전히 부르기 위해 회복해야 할 '느린 순종의 한 걸음'은 무엇입니까?
[묵상 기도]
길이요 진리 되시는 주님, 세상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아래로만 향하던 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시고, 다시금 주님의 임재가 있는 높은 곳으로 향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결핍의 장막 속에서도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매일의 삶이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거룩한 역주행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