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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87 보는 것의 유혹: 시선이 빚는 선택(창세기 13:10–11절 중심으로)

  • 관리자
  • 5시간전

 

본문: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창세기 13:5-13절) 

 

아브람의 파격적인 양보 제안 앞에 선 롯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 ‘눈을 들어’ 주위의 땅들을 살피기 시작합니다. 본문은 롯이 요단 지역을 바라보았을 때, 그곳에 물이 넉넉하여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다”고 매우 화려한 수사로 그 풍요로움을 묘사합니다. 롯의 시선은 철저히 시각적인 매력과 경제적인 합리성, 그리고 당장의 안락함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시각적 정보는 그의 삶의 근본적인 방향과 운명을 결정짓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어로 ‘눈을 들어 보다’(וַיִּשָּׂא אֶת־עֵינָיו, vayyissa et-einav)는 표현은 단순히 물리적인 시야 확보를 넘어, 자신의 내밀한 욕망을 투영하여 가치를 평가하고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취하려는 강한 의지적 행위를 내포합니다. 롯은 표면적으로는 ‘여호와의 동산’(에덴)과 같은 이상적인 풍요를 갈구했으나, 실제 그의 무의식은 나일강의 풍부한 물줄기에 의지하여 인간의 힘으로 일궈낸 ‘애굽’의 성공 방식을 더 깊이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거룩함이 머무는 가나안의 산지보다 인본주의적 성공의 상징인 애굽을 닮은 평야 지대를 주저 없이 선택한 것입니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환경에서 물이 넉넉한 요단 평야 지대는 가축을 대량으로 사육해야 하는 유목민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최고의 입지 조건이자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롯이 내린 선택은 당대의 경제적 기준과 합리적인 판단으로는 매우 탁월하고 똑똑한 ‘미래 지향적’ 결정이었다고 평가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비옥한 땅을 골랐다는 서술 직후에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다”는 서술자의 날카로운 주석을 삽입하여, 그의 합리적 선택이 사실은 영적 파멸을 향한 눈먼 선택이었음을 소름 끼치게 폭로합니다.

 

본문은 롯이 “자기를 위하여”(וַיִּبְחַר־לוֹ, vayyivhar-lo) 요단 온 들을 선택했다고 고발하듯 기록합니다. 여기서 ‘~를 위하여’라는 짧은 히브리어 전치사 하나는 롯의 선택 중심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나 언약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아닌, 오직 ‘자신’의 이익과 육체적 안위만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문법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보기에 화려한 것이 반드시 영혼에 유익한 것이 아님을 망각한 채, 그는 시각적 화려함에 완전히 압도되어 그 이면에 도사린 치명적인 도덕적, 영적 위험을 완전히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성도의 모든 선택 기준은 ‘어디가 더 살기 좋은가’라는 경제적 논리가 아니라, ‘어디가 하나님과 더 가까이 머물 수 있는 곳인가’라는 영적 논리여야 합니다. 롯은 풍요를 얻었으나 언약의 중심지로부터 멀어지는 ‘동쪽’으로의 이동을 선택했고, 이는 성경의 문맥 속에서 하나님 임재로부터 점차 소외되는 불행한 영적 궤적을 상징하는 슬픈 복선입니다. 풍요를 쫓아 약속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그는 아브람과 함께 누리던 거룩한 언약의 보호막에서 스스로 걸어 나가는 선택을 한 셈입니다.

 

오늘날 현대 성도들의 삶도 롯의 이 시각적인 유혹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치열한 영적 전장 한복판에 놓여 있습니다. 이직이나 이사, 투자처의 결정, 혹은 자녀의 진로를 결정하는 매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물이 넉넉한 요단 들’과 같은 세상적인 지표와 조건들을 가장 먼저 살피게 됩니다. 세상은 그런 우리를 향해 그것이 가장 지혜롭고 똑똑한 선택이라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지만, 하나님은 그 화려한 풍요의 장막 뒤에 숨겨진 영적 생태계가 당신의 영혼을 살릴 수 있는지를 먼저 묻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본문을 통해 ‘외관(Appearance)의 내러티브’를 뚫고 지나가는 영적 통찰을 얻게 됩니다. 세상은 “좋아 보이면 무조건 좋은 것이니 취하라”고 선동하지만, 성경은 풍요가 주는 매력을 정직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심판과 소외의 복선’을 동시에 독자에게 보여주어 균형을 잡게 합니다. 우리는 시각적 정보와 통계 수치에 갇힌 좁은 세상적 내러티브에서 과감히 벗어나, 하나님의 최종적인 평가가 담긴 더 거대하고 본질적인 현실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롯의 이 탐욕스러운 시선은 광야에서 “세상의 모든 영광을 단번에 보여주며” 타협을 제안했던 사탄의 유혹 앞에 서신 예수님을 대조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 주님은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성공과 왕권의 길을 거부하시고, 비록 거칠고 험하며 수치가 기다리는 길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좁은 길을 묵묵히 택하셨습니다. 참된 성도의 형상은 시각적 풍요에 현혹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약속의 실체를 믿음으로 분별하는 예수님을 닮은 시력에서 완성됩니다.

 

성경에서 이 장면은 훗날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보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받는 아브람의 모습(13:14)과 매우 흥미롭게 대조를 이루며 메시지를 던집니다. 롯은 ‘자기가 보고 싶은 욕망’을 보았으나 아브람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을 보았으며, 이 차이가 두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갈라놓았습니다. 성경 전체는 우리에게 “당신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느냐”보다 “누구의 관점과 안경을 통해 그 대상을 바라보고 있느냐”가 당신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엄중히 선포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눈을 들어” 간절히 바라보고 있는 매력적인 ‘요단 들’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이 연봉의 파격적인 상승입니까, 아니면 사회적 지위와 화려한 인맥의 확장입니까? 그 대상이 설령 에덴동산처럼 아름답고 완벽해 보일지라도, 만약 그것이 우리를 소돔의 타락한 가치관으로 조금씩 끌어당기고 있지는 않은지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물어보아야합니다.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성공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거룩의 방향을 선택할 때, 비로소 우리의 영혼은 목마르지 않는 진짜 풍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새로운 한날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 눈에 보기 좋은 대로 선택함으로 하나님과 멀어지는 하루가 아니라 예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안에 거하게 되는 복된 날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묵상질문]

1. 본문이 롯의 선택 과정을 묘사하면서 굳이 ‘에덴동산’과 ‘애굽 땅’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동시에 언급한 문학적, 신학적 의도는 무엇일까요?

2. ‘자기에게(lo)’ 유익한 것을 선택했다는 이 짧은 표현이, 롯이 가진 신앙의 본질적 한계와 이기성을 어떻게 날카롭게 폭로하고 있습니까?

 

[적용 질문]

1. 최근 내가 내린 중요한 결정들 중 하나님의 기준이나 공동체의 유익보다, 오직 나의 ‘시각적인 풍요나 합리적인 이익’만을 앞세운 사례는 무엇인가요?

2.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화려한 조건 뒤에 숨겨진 영적 위험 요소(예배의 소홀, 세속적 가치와의 타협 등)를 분별하기 위해 내가 매일 주님께 구해야 할 영적 안목은 무엇입니까?

 

[묵상기도] 

진리의 주님, 저의 영안이 세상의 화려한 풍요와 반짝이는 유혹에 가려져 영적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유익보다 하나님의 약속과 거룩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고, 나 중심의 이기적인 선택이 아닌 주님의 나라와 뜻을 위한 위대한 선택을 내리는 명철한 제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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