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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88 점진적 이동- 경계선 위의 장막(창세기 13:12을 중심으로)

  • 관리자
  • 3시간전

본문: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창세기 13:5-13절) 

 

아브람과 롯의 지리적 분리는 단순한 주거지의 이동을 넘어, 한 사람의 영혼이 어느 방향을 향해 항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영적 상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언약이 머무는 가나안 산지에 묵묵히 거주하며 불편함을 감수했으나, 롯은 평야의 성읍들을 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결국 ‘소돔까지’ 자신의 장막을 깊숙이 쳤습니다. 이 짧은 구절은 성도의 삶이 한순간에 급격히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며 삶의 자리를 옮겨가는 ‘점진적 동화와 침식’의 과정을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히브리어 동사 ‘아할’(אָהַל, ahal)은 장막을 치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의 역동적인 행위를 뜻하는 전문 용어입니다. 롯은 처음부터 소돔의 타락한 시민이 되어 하나님을 배반하려 했던 의도는 아마 없었을 것이며, 단지 비옥한 평야를 따라 양 떼를 더 잘 먹이기 위해 조금 더 좋은 풀밭을 찾아 이동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조금씩’이라는 사소한 이동이 도달한 최종 종착지는 결국 영원한 멸망이 예고된 소돔의 문턱이었으며, 본문에서 ‘~까지’(עַד, ad)라는 단어는 영적 경계선을 위태롭게 넘나드는 긴장감을 문법적으로 예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역사문화적 배경에서 고대의 성읍(도시)은 정착의 안락함과 거대한 시장의 기회, 그리고 적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군사적 성벽을 제공하는 매우 매력적인 문명적 공간이었습니다. 롯이 성읍들 가까이로 나아간 것은 단순한 주거지의 변경을 넘어, 광야의 유목민으로서 지켜야 할 순례자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도시 문명의 안락함과 화려한 네트워크 속에 편입되려는 ‘삶의 체제 전환’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도시가 약속하는 거짓 안전 신화 뒤에 숨겨진 치명적인 영적 함정과 부패의 덫을 우리에게 강력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비록 척박할지라도 여전히 약속의 땅에서 “장막”에 거하며 이동성과 순례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유지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견고한 성벽의 보호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삶을 지탱하는 유일하고도 견고한 요새로 삼았습니다. 반면 롯은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안전과 정착의 성읍을 쫓아갔으나, 그것이 도리어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서서히 갉아먹는 치명적인 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우리 삶의 장막 말뚝을 박는 그 구체적인 위치가 곧 우리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실제적인 자리를 결정하게 됩니다.

 

성도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은 세상 속에서 ‘거룩한 경계 유지’(Boundary Maintenance)를 얼마나 치열하게 해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깊이 들어가 살아가되, 결코 세상의 가치 체계에 속하지 않는 거룩한 긴장을 유지해야만 하는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롯은 이 영적 경계선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조금씩 허물며 소돔의 문화적 영향권 안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갔으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어디까지 타협해도 괜찮은가”를 묻는 자들이 아니라, “어디가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거룩한 자리인가”를 묻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현대 성도들의 ‘장막 이동’ 또한 눈에 띄지 않게 매우 세밀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주일 성수의 가치에서 조금씩 양보하고, 기도의 시간을 업무의 분주함과 여가에 내어주며, 세상의 소비 중심적 문화와 성공 지상주의에 조금씩 젖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나는 아직 소돔의 성문 안으로 발을 들이지 않았다”고 애써 자위하며 안심할지 모르지만, 이미 우리의 장막 입구가 소돔을 향해 열려 있다면 우리는 이미 롯의 위험한 길을 걷고 있는 셈입니다.

 

‘거짓 안전과 세속적 동화(Assimilation)의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은 “거대한 시스템 가까이 다가가야만 네 미래가 안전하다”고 집요하게 유혹하지만, 성경은 ‘당신이 어디에 물리적으로 사는가’보다 ‘어떤 근원적인 이야기가 당신의 이동 경로를 이끄는가’를 묻습니다. 아브람은 도시의 보호막 없이도 언약 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가 되었고, 롯은 도시의 보호를 구걸하며 다가갔으나 결국 자신이 가진 모든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롯의 이 점진적인 이동은 독자들에게 ‘삶의 양식이 사람을 어떻게 형성하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합니다. 죄는 대개 요란한 큰 사건으로 찾아오지 않고, 아주 사소한 이동과 작은 타협의 반복이 쌓여 결국 우리의 영적 근육을 약화시키고 우리를 소돔화시킵니다. 성도의 거룩한 형상은 매일 아침 자신의 장막 말뚝을 다시 뽑아 하나님께로 방향을 틀고 나아가는 ‘순례자적 결단과 헌신’을 통해 비로소 아름답게 빚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의 맥락에서 롯의 이 위험한 이동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에 나타난 인간의 교만한 정착 의지와 연결되며, 훗날 소돔의 끔찍한 멸망(창 19장)을 향해 치닫는 슬픈 전주곡이 됩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하나님을 떠나 ‘동쪽’과 ‘성읍’을 향해 치닫는 인간의 발걸음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주며, 우리를 이 땅이 아닌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영원한 도성”을 바라보는 믿음의 여정으로 끊임없이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양식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장막은 최근 수개월 동안 어느 방향으로 조금씩 옮겨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질감, 지출의 우선순위, 그리고 시간의 사용처가 가리키는 실제적인 방향은 어디입니까? “이 정도쯤은 세상 사람들도 다 하는 것이니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소돔의 문턱까지 다가선 위험한 습관이 있다면, 오늘 즉시 결단하여 장막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려야합니다. 참된 거룩은 더 늦기 전에 나의 방향을 전격적으로 수정하는 결단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입니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장막이 되고,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는 믿음의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질문]

롯이 단번에 소돔 성내로 들어가지 않고 ‘소돔까지’ 점진적으로 장막을 옮겼다는 서술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경고는 무엇입니까?

약속의 땅 가나안에 거주한 아브람과 성읍들을 향해 나아간 롯의 대조는, 언약 백성이 가져야 할 ‘순례자적 정체성’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적용 질문]

내 신앙의 견고했던 경계선이 최근 조금씩 무너져 내려 ‘세속적인 가치와 문화’에 위험할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영역은 어디인가요?

세상이 약속하는 안전 신화(재력, 인맥, 지위)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언약만을 신뢰하기 위해, 오늘 내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단호히 거리를 두어야 할 ‘나만의 소돔’은 무엇입니까?

 

[묵상기도] 거룩하신 주님, 저의 인생 장막이 안락함과 즉각적인 유익만을 쫓아 소돔의 멸망할 문턱까지 내려가지 않게 지켜 주옵소서. 세상의 가치에 서서히 젖어 들며 영적 감각이 무뎌져 가는 저의 영혼을 일깨워 주시고, 매일 아침 주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향해 저의 삶의 방향을 바로잡고 나아가는 성실한 하늘 순례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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