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문을 여는 열쇠
어느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오랜 기간 목회하다 은퇴하신 아버지 목사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아버지! 저는 도저히 더 이상 이곳에서 목회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답장을 바랍니다.”
얼마 후에 아버지 목사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그런데 자기가 보낸 편지가 고스란히 봉투까지 함께 들어있는 것이었다.
아들 목사는 아버지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주 작은 쪽지가 하나 들어있었다.
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아버지의 글이 쓰여 있었다.
"아들아, 네가 보낸 편지를 읽어보니 받는 쪽의 주소를 잘못 썼더구나.”
아들 목사님은 아버지의 뜻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지혜로워 보일 수도 있다.
어쩌면 기도하는 것은 매우 막연하고 어떤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은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신뢰가 있다면 기도는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치 호흡과도 같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설교나 전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고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기도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도 한다.
대화는 단지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일방적으로 떼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기에 기도한 만큼 노력해야 하고, 기도한 만큼 일해야 한다.
헌신이 없고 자기희생이 없는 기도는 대부분 응답이 없다.
그리고 기도는 진심으로 해야 한다.
간절함이 배어있는 기도가 진실한 기도이다.
가끔씩 통성기도하는 모습에 놀라는 성도들이 있는데,
성경에서는 조용한 묵상기도보다 간절하게 큰 소리로 부르짖는 기도에 대한 언급이 훨씬 더 많다.
물론 통성기도뿐 아니라 묵상기도도 간절하게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묵상기도든, 통성기도든 진심을 바치고 간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자 세네카는 “그림의 떡은 떡이 아니요, 붙지 않은 불은 불이 아니며, 간절하지 않은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간절한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다.
평생 기도로 살았던 조지 뮬러는 5만 번 기도하여 5만번 다 응답 받았다고 한다.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