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거와 믿음
어느 목사님이 교회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부활절이 무슨 날이냐고 묻자
한 아이가 ‘달걀 주는 날’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 부활절에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달걀을 준다.
하지만 왜 달걀을 주는지 모르고 받으니 문제이다.
아주 죽은 것 같던 달걀이 어미 닭의 품에서 21일을 지나 딱딱한 껍질을 깨고, 예쁜 병아리로 부화되어 나오는 것이 예수님이 무덤을 깨뜨리고 살아나신 것과 비슷하여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 된 것이다.
그 아이처럼 우리도 의미를 모르고 부활을 말하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님의 부활이 다른 때는 전혀 의미가 없다가 1년에 딱 한 번,
부활주일에만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끼는 성도들이 많다.
마치 1년 내내 부모의 속을 썩이고 마음 아프게 하던 자식이 부모님 생신이 돌아오자
그날 하루만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절기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언제나 부활하신 주님이 살아 계셔야 한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의 삶을 지배하고 나를 다스리게 나의 자리를 내어드리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고 산다면 구태여 부활절을 거창하게 지키지 않아도
언제나 부활절이 될 줄로 안다.
어떻든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또 주님 안에 잠자던 성도들의 부활을 믿는다.
사람들은 육체가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살 수가 있느냐고 묻는다.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에는 역사상 뚜렷한 증거가 있다.
첫째는 빈 무덤이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가장 유력한 부활의 증거이다.
성경이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시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본국에 보고한 문건에서도
예수님의 빈 무덤에 대한 언급이 있다.
둘째는 제자들의 변화이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하여 두려워서 침묵하고 숨기에 바빴던 제자들이
갑자기 온갖 죽음의 위협에도 부활의 증거자로 돌변한 것과
당시 유명한 핍박자였던 바울이 회심하여 예수님 부활의 증거자가 된 것은
부활사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셋째는 교회의 존재이다.
당시 율법을 신봉하던 유대교의 극심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던 사도들과 성도들의 모임이 오늘날 교회가 되었다.
넷째는 주일 제도의 확립이다.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으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즉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 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거룩하게 여긴다.
이와 같은 부활에 대한 증거가 있지만, 안 믿는 자, 못 믿는 자에게는 그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기에 부활은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