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25.6월 넷째주

  • 관리자
  • 2025.06.18 14:51
계 2차대전 때 연합군이 독일과의 전쟁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독일에는 로멜이라는 명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군을 잘 지휘하여 전투 때마다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 로멜 장군이 1944년 6월초 독일군에게 프랑스 서부해안의 경계를 강화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연합군이 프랑스 서부해안으로 상륙하면 독일군이 결정적으로 불리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프랑스 서부해안에 기상악화로 안개가 끼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로벨은 기상악화로 연합군이 침투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아내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연합군은 그 틈을 타 6월 6일 대대적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그날을 디데이(D-day/Decimal-day)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계획을 실시할 예정일을 말할 때 디데이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그 후 독일은 끝까지 저항했지만 연합군은 결국 최후 승리를 거뒀습니다.
독일과의 전쟁을 끝내던 날을 브이데이(V-day/Victory-day) 즉 승리의 날이라고 말합니다.
 
리스도인에게 지금은 영적으로 보면 디데이와 브이데이 사이의 영적인 긴장과 전쟁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부활 사건은 사망권세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킨 그리스도인의 디데이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사건은 어둠의 세력인 사탄 마귀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둬 그들을 무력화시킨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는 모두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아직도 세상을 속이고 격렬히 저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흑암의 세력은 세상사람을 속이고 죄 짓게 하고 타락시켜 영적으로 결박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 전쟁은 주님이 다시 오시어 사탄을 심판하고 새 하늘 새 땅을 이루실 때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날이 될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 재림하실지 우리는 전혀 모릅니다.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만찬회에 부름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언제나 준비되어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는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수님 재림의 날을 내 인생 최고의 날로 맞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주님이 우리의 믿음을 보고 놀라 감동을 받으실까요?
첫째, 거룩한 긴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이 졸며 잘 때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깨어 믿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도적이 밤중에 침입할지라도 주인이 깨어있으면 절대로 집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캄캄한 밤중에 도적같이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약속대로 반드시 다시 오시기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둠의 옷을 벗고 빛의 갑옷,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긴장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빌린 믿음은 소용없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준비도 같이 하고 기다리기도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기름이 없으면 빌리면 되는 줄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름을 빌릴 수 없었듯이 믿음도 빌릴 수 없습니다.
막연한 믿음이나 다른 사람의 믿음이 아니라 ‘나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신앙, 또는 아내/남편의 신앙이 좋으니 나도 덩달아 천국에 갈 수있다고 착각합니다.
가족의 기도는 능력이 있고 큰 힘이 되지만, 심판대는 나 혼자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자기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 자가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믿음은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신뢰의 특징은 전적인 위탁입니다.
내 삶의 그 어떤 것, 부끄러운 것도 다 맡길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다 아시기에 우리 삶의 수많은 짐들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셋째, 형식보다는 내용에 충실해야 합니다.
열 처녀 모두 외형상으로는 등불을 준비한 것 같지만 다섯 처녀는 기름이 충분히 준비 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지만 형식은 있으되 내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신앙도 겉모습은 다 그리스도인이요 제자인 듯하지만 믿음의 용량,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는 다 다릅니다.
믿음의 겉모양, 화려함보다는 내 삶에 복음의 능력, 주님의 인격, 사랑의 수고가 나타나야 합니다.
 
넷째, 성령의 기름을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외식을 삼가고 빛 된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곧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도 처음에는 기름이 있었지만 신랑이 올 무렵에는 기름이 떨어져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어느 때 갑자기 뜨거워졌다가 식어버린 냄비 신앙이 아니라 오늘, 지금, 현재의 성령충만이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의 불쏘시개는 기도입니다.
힘써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을 받아 세상을 이기게 되고 그 날에 거룩한 신부로서 기쁨으로 주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실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 영적으로 깨어 성령의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여 주님의 만찬에 당당히 참여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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