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세기 1장 24-31절)
오늘은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창조를 다른 피조물들과 구별하셨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구별은 사람이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잘 드러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를 다스리도록 지음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오늘도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영역을 복되게 하는 감사의 하루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1장 24-30절 말씀은 동물들과 사람의 창조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잘 살펴보면 이전 기록과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목에 있듯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말씀이 두 번에 걸쳐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심히'라는 강조를 통해 좀 더 특별함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둘째 날과 셋째 날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둘째 날에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라는 기록이 나오지 않고 셋째 날과 연결되어 나오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창세기 1장의 기록은 날을 기준으로 구분하자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어구를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이렇게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기준으로 구분하자면 둘째 날과 셋째 날은 묶여 지고 여섯째 날을 동물의 창조와 사람의 창조로 나누어 구분하면 됩니다. 그리고 후자로 구분해서 보는 것이 창세기 1장의 기록 목적에 더 부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기록 목적은 창조의 과학적인 설명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창세기는 목적을 가지고 기록되었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왜 천지를 창조하셨는 가를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모세와 함께 광야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나안을 정복하여 그 땅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신정 국가를 세워가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포로기에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믿음의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오늘 우리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야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창세기 1장은 단순한 창조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고 부르신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시작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아야 하며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창세기 1장을 살펴보면 둘째 날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기록이 없다는 것과 여섯 째날에 두 번이나 기록된 것의 차이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은 어떤 것일까? 물과 물의 구분은 어떤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다고 기록하지 않은 것일까? 동물의 창조는 어떤 측면에서 보시기에 좋은 것일까? 그리고 사람의 창조는 왜 심히 좋았더라 고 기록하셨을까?
창세기 1장의 창조는 단순한 창조의 순서를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사람의 창조에 초점을 맞추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두움과 혼돈 속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채우시고, 그 속에서 질서를 잡아가시는 순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둘째 날과 세째 날의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거주하게 될 땅의 출현이 초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과 물의 구분은 땅의 출현을 위한 예비 단계입니다. 물과 물의 구분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이 거주할 땅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물과 물을 구분한 후 궁창 아래 물에서 땅이 출현 한 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여섯째 날에도 동물과 사람의 창조를 다 마치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기록하지 않고, 동물 창조 후에 기록하고 사람의 창조 후에 심히 좋았다고 기록한 것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 구분은 동물과 사람의 창조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의 차이는 이전까지의 창조와 사람의 창조가 다르다는 사실도 반영합니다. 이것이 분명한 이유는 사람은 여타 피조물들과 달리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받아 하나님의 창조한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 다른 피조 세계의 창조 때와는 달리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창조의 완성은 7일째 하나님께서 안식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사실은 창세기 2장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창조와 하나님의 피조 세계의 창조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피조 세계의 완성과 성취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피조 세계의 완성은 하나님께서 대리 통치자로 지은 사람의 통치로 완성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 지음받은 존재라는 사실이 이 부분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표현이 그래서 매우 중요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대리해서 피조 세계를 다스릴 사람을 염두에 두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리해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핵심적인 사항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노예로 다스림을 받았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사실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스림을 받는 존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존재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삶을 뒤집어 놓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스리는 존재로 부름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이제 이 질문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광야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다스리는 존재가 아닌 다스림을 받는 존재로 익숙하게 살아갑니다. 부모의 다스림, 선생님들의 다스림, 사회 속에서 법의 다스림 등은 우리가 누군가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는 사람은 다스리는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우리는 다스리는 통치권자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 앞에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맺고 그들을 제사장 나라(왕 같은 제사장)로 부르셔서 잃어버린 통치권을 회복케 하셔서 열방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다스려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것이 율법이고 그것이 구약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기록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다스리는 통치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십니까? 내가 무엇을 다스릴 수 있을까? 과연 내 다스림을 받는 존재가 있을까? 이러한 질문 앞에 서게 될 때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을 위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가지고 그 뜻대로 다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본을 앞서 보이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고 계시며 그 뜻을 온전히 실천하시고 드러내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의 완전한 성취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 놓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뒤를 따라 그분과 함께 하는 삶의 모든 것들이 다스리는 통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그 삶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대리 통치자로 우리를 부르신 그 목적에 부합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한날, 하나님께서 생명을 부여하신 복 된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존재,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존재로 오늘도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우리만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을 통치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내 욕망에 사로잡혀 죄와 사망의 통치를 확장해 나가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삶, 나를 통해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회복되는 삶, 내 삶의 영역이 생명의 풍성함으로 가득하게 되는 복 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하나님께서 나를 대리 통치자로 오늘도 부르고 계십니다. 내 삶의 영역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스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2. 내가 다스리는 영역 안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나로 인해 기쁨을 누리며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 내가 해야 될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3.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하게 지으심(대리 통치자임)을 어떻게 확인하고 계십니까? 그 사실이 나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요?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죄 가운데 살아가는 저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사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회복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더 깊이 알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죄와 사망의 통치를 받는 멸망의 자식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기쁘신 뜻 안에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내 삶에 이루어가는 복된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통치의 복 됨을 보여줄 수 있게 하시고 내 삶의 영역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으로 흘러넘쳐 모두에게 나누어주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