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창세기 14:13-24절)
본문은 롯의 위기 소식을 듣는 아브람을 향해 ‘히브리 사람’(הָעִבְרִי, ha-ivri)이라는 독특한 칭호를 처음으로 부여합니다. 이는 단순히 혈통을 나타내는 이름을 넘어, ‘강을 건너온 자’ 혹은 ‘경계에 서 있는 자’라는 깊은 신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지만 가나안에 속하지 않았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왔지만 더 이상 그곳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과 세상을 잇는 ‘경계선의 사람’으로 서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이 칭호가 이 시점에 등장한 것은 아브람이 이제 본격적으로 세상의 갈등 속에서 구별된 존재로 활동하기 시작했음을 알립니다. ‘히브리 사람’으로서 그는 주변 민족들과 섞이지 않는 정체성을 가졌으나, 동시에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성도는 세상과 물리적으로 단절된 자가 아니라, 세상과는 다른 기준(강 저편의 가치)을 가지고 세상 한 복판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당시 고대근동사회에서 아브람은 당시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이방 나그네’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낮은 지위의 이름을 ‘약속의 백성’을 상징하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승격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소수자로 느껴질 때, 주님은 오히려 우리에게 ‘히브리 사람’이라는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들만이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은 우리의 거주지가 아니라 우리의 ‘지향점’에 의해 결정됩니다. 아브람이 히브리 사람이라 불린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정든 땅을 등지고 약속의 땅으로 ‘강을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죄의 땅에서 은혜의 땅으로 강을 건넌 자들입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강을 건넜다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 땅의 방식에 동화되어야 성공한다”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건너온 자’의 정체성을 잃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왕들과 적당히 섞여 살았다면 롯을 구출할 영적 야성도, 318명의 훈련된 식솔도 준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다름이 곧 우리의 힘이며, 우리의 구별됨이 곧 세상을 살리는 무기가 됩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닮아가야 할 그리스도의 형상은 하늘 영광을 뒤로하고 이 낮은 땅으로 ‘강을 건너오신’ 진정한 히브리 사람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죄인들 속에 거하셨으나 죄에 물들지 않으셨고, 세상의 법 아래 계셨으나 하늘의 권세로 다스리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어 ‘하늘에 속한 자’로 삼으셨고, 이제 우리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어 하늘의 소식을 전하게 하십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이 ‘경계인’의 주제는 베드로가 성도들을 향해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라고 부른 권면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리는 정착민이 아니라, 영원한 도성을 향해 행진하는 순례자들입니다. 히브리 사람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의 통치를 받고 있는지를 매 순간 상기시켜 주는 거룩한 꼬리표와 같습니다.
이 정체성은 위기의 순간에 가장 선명하게 빛납니다. 아브람이 롯을 구하러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가나안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히브리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에 사로잡힌 영혼들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낼 수 있습니다. 섞이지 않음이 곧 진정한 사랑의 시작입니다.
오늘 우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름은 무엇입니까? 직함입니까, 재산입니까, 혹은 가문입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께로 건너온 자’라고 부르십니다. 이 이름에 걸맞은 거룩한 야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걱정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름뿐인 히브리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새로운 아침이 주어졌습니다. 강을 건너온 자의 자부심을 품고 세상 속으로 나아갑시다. 우리가 밟는 땅은 가나안이지만,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는 하늘의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해 “저 사람은 우리와 다르다”고 말할 때, 주님의 영광은 우리를 통해 비로소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 하루, 거룩한 경계인답게 세상에 소망을 주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질문]
1. 아브람에게 '히브리 사람'이라는 칭호가 이 전쟁의 시점에 붙여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2. 나는 세상의 주류 문화에 편입되기를 갈망합니까, 아니면 구별된 ‘건너온 자’로서의 정체성을 소중히 여깁니까?
[적용 질문]
1. 오늘 내가 속한 공동체(직장, 학교 등)에서 세상의 방식과는 다른 ‘하늘의 방식’을 보여주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거룩한 야성’(기도의 습관, 정직한 언어 등)을 회복하기 위해 오늘 결단할 행동은 무엇입니까?
[묵상기도]
인도하시는 주님, 저를 죄의 땅에서 불러내어 주님의 은혜의 강을 건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의 가치에 매몰되지 않는 ‘진정한 히브리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저의 다름과 거룩함이 세상에 상처를 주는 독선이 아니라, 포로 된 자들을 자유케 하는 구원의 능력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