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를 생각합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이 가정의 달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바로 어버이에 대한 ‘효’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자녀들에게 있어서 부모는 절대 의존, 절대 공경의 대상이었다.
삶의 지혜를 부모로부터 배웠기에 스승이었고, 모든 권위가 아버지에게 있었기에 통치자였고,
모든 필요가 그에게서 채워졌기에 공급자였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공업화, 도시화로 인해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특별히 핵가족화로 인해 집안에 부모는 있어도 어른은 없고,
‘나’는 있어도 형제와 ‘우리’는 없는 개인주의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핵가족 하에서 부모는 모든 관심을 아이에게만 쏟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시대의 엄마와 아빠들은 눈물나리만큼 지극한 정성을 아이에게 쏟아
자신의 아이들을 왕자와 공주로 키우는 일에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 잇속에만 밝고 자기중심적 계산에는 능한 영특하고 똑똑한 아이들로 키우기는 했지만,
정작 부모인 자신들은 더 이상 그 자식들로부터 절대적 존경과 공경을 받지 못한다는 데 있다.
당사자인 부모들조차 아이들에게 더 이상 효를 절대적 사회규범으로 말하지 않는다.
말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는 전혀 감동이 되지 않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어려서부터 아이 중심의 생활방식을 배워온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성경은 효에 대하여 단호하고 확실하게 적극적인 규범을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명령을 거역하는 자식에 대한 엄중한 경고도 잊지 않고 있다.
완악하고 패역한 자식에 대하여 성읍 장로들에게 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복음시대인 오늘날에 문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단호하고도 엄중한 명령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효는 조건적이거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조건적이고 적극적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섬겨야 한다는 의미이다.
기독교는 효의 종교이다.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고 가치관이 바뀌어도 어버이가 날 낳은 사실이 변하지 않는 이상
자식들은 어버이에 대한 효행을 드려야 한다.
자식이 똥 싸고 오줌 싸던 유아 시절에 어버이는 귀엽다고 자식들을 품에 안고 키웠다.
그 어버이가 연로하여 자리에 눕고 움직이지 못할 때
이 땅의 장성한 자식들은 대소변 받아내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어버이주일에 어버이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점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