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15-17절)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령하시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 눈에 들어오는 중요한 부분은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두다는 '쉬다', '휴식하다', '정착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8절에서 한글 번역으로는 '두시니라'고 되어있지만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즉,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메시지는 '안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노아가 물에서 구원됨을 묘사할 때(5:2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대적들의 땅에서 '안전(쉼)'을 주기로 약속한 본문(신 3:20, 12:10, 25:19)에, 롯과 그의 가족을 안전하게 두었을 때(창19:16)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안전을 위해 에덴을 예비하셨고, 이 동산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은 에덴동산에 두신 이유입니다.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신 것이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경작하며, 지키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매우 중요하며, 핵심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경작하다'는 땅을 갈거나, 노동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 의미는 확장되어 서로에 대한 '봉사(창 29:15, 31:6)'를 말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예배를 가리키는 데에도 자주 사용됩니다(출3:12). 실제로 성막과 성전 예배에서 레위인들이 맡았던 중요한 임무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출 38:21, 민 3:10, 18:6, 대상 24:3, 대하 8:14). 그리고 '지키다'로 번역된 단어는 성막에서 레위인의 책임을 묘사하는 일에 사용되는 단어로 성막을 지키는 데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사실은 이 단어들이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의미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앞서 에덴이 성전의 원형이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에덴이 성전의 원형이라면 우리는 '경작하다, 지키다'의 의미를 성전에서 봉사하며 성전을 보호하는 성전 지기의 역할을 사람에게 맡기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번역해보자면 '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에덴의 동산은 소유물이기 전에 보살피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가 사람을 '종, 노예'로 부리기 위해 이곳에 거하게 하셨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고대 근동 신화에서는 신전에서 사람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창조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은 평생 노역을 하며 사는 존재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러한 사실은 '두다'라는 단어를 통해서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에덴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안전을 위해 만드신 곳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임재하셔서 사람에게 섬김 즉, 교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를 맡아서 잘 관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라면,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곳이라면 그곳을 잘 관리하는 것이 짐이라고, 노역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는 광야의 이스라엘에게는 어떻게 들려졌을까요? 이집트에서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자랐습니다. 노예로 주인을 섬기고 바로를 섬기고 이집트의 신을 섬겼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노예였기 때문에 감당해야 했던 일들입니다. 그리고 노예는 그런 주인과 바로, 그리고 신들에게 봉사하고 섬기는 존재로 태어나 평생을 사는 것이라고 배웠을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의무만이 존재합니다. 그런 삶이 몸에 베어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안전을 위해 사람을 위해 예비하신 곳, 에덴에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에덴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부르셔서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노예로 섬기는 것이 아닌 사랑의 관계로, 언약의 관계로 맺어져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사랑하는 하나님을 섬기며, 봉사하는 삶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노예로 주인을, 바로를, 이집트의 신을 먹여 살리고 보호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먹여 살리고, 안전을 책임지시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를 맡아 관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그리고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입니다. 에덴동산에 사람을 두셔서 '거룩'한 존재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동산을 맡아 관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노동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셔서 사랑의 교제를 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들었을 때 이스라엘은 새로운 삶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하지 않았을까요?
오늘 우리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죄와 사망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무엇을 섬기며,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가 놓여진 곳,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영역은 어디입니까? 오늘 우리의 삶의 터전은 심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삶의 영역을 보호할 그 어떤 무엇도 내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은 내 삶의 영역에 침범하여 착취하고 어떤 보상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운명이고 숙명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는 것이 목표입니까?
이러한 삶은 죄로 왜곡된 세상의 결과이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하시고 성취하시기 원하셨던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셔서 안전이 담보된 회복된 삶으로 부르십니다. 안전은 내가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리고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 아무것도 바뀐 것 같지 않은 세상에서 전부 바뀌어진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방향 없이, 무엇을 섬기는지, 무엇을 지켜야하는지 모르며 그저 앞만 향해 나아갔다면 이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안전한 곳에 두시고 나에게 공급하시며 나와 사랑의 교제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 삶의 영역이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셔서 나를 통해 다스리실 수 있도록 내가 내 삶의 영역을 가꾸고 지키는 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세상과 구별되면 하나님께서 임하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의 사랑 고백을 듣기 원하십니다. 이 사랑의 고백이 우리의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 영역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한 날, 나를 안전한 곳에 두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으로 시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그곳에서, 내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을 드리며,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다스리심을 경험하시는 복 된 날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여 두신 곳은 어디입니까?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2.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 오늘 내가 해야 될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3. 세상의 왜곡된 질서와 방향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회복하기 위해 오늘 내가 결단할 것들은 무엇일까요?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를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이 땅에서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도록 부르심에 감사합니다. 내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이 제게 맡기신 가정, 직장, 교회, 공동체가 에덴의 동산과 같이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동산이 될 수 있도록, 잘 돌보며 그 안에서 기쁨으로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또한, 제 삶 속에서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순종하기 원합니다. 주여! 저의 삶을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