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31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 관리자
  • 2026.06.10 14:51

본문: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창세기 4장 1-8절)

 

오늘 본문은 첫 가정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첫 기록은 하와의 임신과 출산입니다. 이 부분을 성경은 아주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였고, 그로 인해 임신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인을 낳았고, 하와는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는 하와의 말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창세기 저자가 주목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인의 후손'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여인의 씨'에 주목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께 반역한 결과로 하나님과 단절되고 에덴동산 밖에서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한 가지 소망을 품게 됩니다. 자신이 낳을 '자녀, 씨'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자녀, 씨'를 낳았습니다. 

 

하와는 아마도 창세기 3장 15절에서 선언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그 말씀을 가지고 자신이 낳을 '자녀, 씨'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린 자녀를 낳자 하와는 이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복받치는 감정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담아 터져나오는 외침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내가 득남하였다'라는 선언입니다. 이렇게 부모의 기대를 받고 태어난 아이가 '가인'입니다. 가인을 낳은 후 또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아벨'이라고 지었습니다. 두 자녀는 커서 아벨은 양을 치고 가인은 농사를 짓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왜 그 일을 선택했는지 성경은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추측도 허락하고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일한 결과를 가지고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갔는지에 대한 성경의 기록입니다. 

 

성경은 두 사람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은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둘은 부모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에덴동산에서의 사건들에 대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가인과 아벨은 부모님께 들은 내용을 토대로 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았을 것이고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들이 드린 제사를 통해 드러나 있습니다. 

 

성경은 가인이 농사를 지었기에 땅의 소산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치는 자였기에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아주 대조적입니다.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다고 기록합니다. 이제 이 제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해야 할 내용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거부하시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기록에서 차이점들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드렸다고 서술합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드렸습니다. 이 둘의 차이점은 첫 것이라는 차이입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는데 첫 것이라는 기록이 없고, 아벨은 양의 새끼를 드렸는데 첫 새끼를 드렸습니다. 즉 가인은 제물을 드림에 있어 하나님의 것을 구별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고, 아벨은 첫 새끼로 한정하여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제물을 구별하여 드렸는가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둘의 제사에 대한 언급에 더 핵심적인 내용이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즉 가인을 받지 않으셨기에 가인이 드린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제물과 연관지어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지 않는 가인의 태도에서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고, 그런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가인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인의 삶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역시 아벨을 받으셨기에 아벨의 제물을 받으신 것입니다. 제물을 드림에 있어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준비하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태도에 하나님을 향한 아벨의 삶의 모습이 드러나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벨의 삶을 받으신 것입니다. 

 

앞서 성경은 후손, 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첫 아들을 낳고 이 아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허락하신 여인의 후손, 씨라고 받아들이고 기대하며 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아벨 보다는 가인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심으로 가인이 여인의 후손, 씨가 아님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매우 놀랐을 것입니다. 그럼 누가 여인의 후손인가? 성경을 읽는 독자들도 가인의 제사를 거부하신 하나님에 대해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여인이 낳은 아이라고 그를 사용하지 않음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여인의 후손은 인간의 생각과 기대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반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가인 대신 아벨을 통해 역사하실 것인가?

 

이 부분에서 성경 기록의 초점은 가인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거부하시자 가인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거부하시자 몹시 분했고, 그 분으로 인해 안색이 변했습니다. 이 모습에 하나님께서는 반문하십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하나님 보시기에 가인은 선을 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삶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기에 제물을 준비하면서 구별해서 드릴 마음의 태도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과 태도로 제물을 드렸으면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있느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삶, 하나님과의 단절된 삶,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은 삶을 살게 되면 죄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문에 엎드려있다는 의미는 맹수가 먹이를 노리고 웅크리고 있는 표현이기에, 죄가 이제 곧 덮칠 것이고 죄에 삼켜진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가인이 행할 일을 알려주십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는 말씀은 아주 강력한 경고입니다. 죄가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죄의 지배를 받지 말고 오히려 죄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상황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돌이킬 기회를 주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가인이 죄를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죄를 통제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무능함과 죄의 지배에 무력함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아벨에게 나아갑니다. 그리고 아벨을 죽여버립니다. 가인 대신 여자의 후손이라고 보여지는 아벨이 죽은 것입니다.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죄의 지배를 받고 죄에 사로잡혀 살인이라는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지 못하면, 죄와 사망의 통제를 받게 되고 그 삶의 모습은 결국 비참한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삶의 비참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뱀의 유혹을 따라 하나님께 반역한 사람이 하나님과 단절되어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삶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다스려야 할 사람이 오히려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아 삶이 황폐해지는 것을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은 공동체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경험했습니다.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세상은 소망이 없음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황폐화된 삶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통치 아래 소망 없는 이스라엘을 다시금 언약 백성 삼으셔서 열방을 향해 다스리게 하시는 소명을 주셨습니다. 죄와 사망을 다스릴 수 없는 이스라엘이 이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죄와 사망이 통제됩니다. 죄와 사망이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황폐화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여인의 후손, 씨'는 자신들에 의해 이어지고,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존시키시며 지키신다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죄와 사망이 우리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성령의 내주하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기에 죄와 사망을 이기고 우리의 삶이 풍성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시고 그 열매를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고 선한 삶을 살아갑니다. 구원의 성취를 맛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선하게 다스리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 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 문 앞에 우리를 죄와 사망의 통치로 이끌어가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죄에 지배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께서 나를 다스리셔서 모든 사람이 보아 알게 되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복 된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삶의 제사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2. 문 앞에서 나를 지배하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죄를 자각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될까요?

 

3.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우리의 삶이 소망이 될 수 있을까요?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죄를 통제하고 다스릴 수 없어서 멸망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신 아버지 하나님!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 삶이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이 받으시기 합당한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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