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세기 12장 1-3절)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셔서 그에게 하실 일들이 무엇인지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약속은, 땅을 아브람에게 선물로 주시겠다는 것, 아브람을 통해 큰 민족이 이루어 진다는 것, 아브람이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 어느 것 도 이루어진다고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아브람은 땅을 소유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더 확장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면 오히려 더 실현 가능해 보였을 것입니다. 정복이나 다양한 상황을 통해 땅이 확장되어져 가는 것은 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땅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땅을 정복하기 위해 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실 땅, 그러나 그 땅을 어떻게 주실지는 알지 못하는 채로 무작정 떠나야 했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땅을 떠난 아브람은 남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남의 땅에서 아브람은 그 어떤 법적, 정치적, 군사적 보호나 권리를 가질 수 없는 상태로 들어갑니다. 이제 자신이 소유한 땅에서 나그네에게 베풀었던 그 호의를 자신이 나그네가 되어 땅의 소유주가 베푸는 호의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두번째로 아브람이 받은 약속은 아브람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을 통해 큰 민족이 세워진다면 그것은 아브람의 후손들이 번창해야 합니다. 이 약속 당시 아브람의 아들들이 많았다면 가능성이 보였을 수 있습니다. 자녀가 없더라도 아브람이 젊거나 부인이 여러 명이거나 하면 자녀를 많이 낳을 확률이 높아져서 가능성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1장 후반(11:30절)에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불임으로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습니다. 불임의 아내로부터 민족이 나올 수 없습니다. 성경은 여기서 사래의 불임을 말함으로 아브람과 사래로부터 자녀, 후손, 민족이 세워지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약속은 아브람이 복이되는 것입니다. 복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복은 채워져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상황은 복과 거리가 멀게 보여집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살 던 땅을 떠나 나그네로 새로운 땅에 정착해야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당시 나그네은 그 땅의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지만 그 어떤 법적인 보호도 받을 수 없습니다.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단지 그 땅의 백성들이 베푸는 호의에 의지하여 살아가야합니다. 호의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복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당시 그 땅의 백성들은 이러한 아브라함의 모습을 복이라고 볼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용들이 아브람이 당장 받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은 아브람 당대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땅을 소유했다고는 하지만 그 땅은 아브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는 매장지가 전부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브람에게 믿음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이러한 믿음의 요구에 반응하여 자신이 거하는 땅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주실 땅, 약속하신 땅에 도착합니다. 아브람의 여정은 이렇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출발합니다. 이 불가능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아브람을 복으로, 믿음의 사람,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이제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요구되는 믿음이 아브람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아브람을 믿음의 사람, 믿음의 조상으로 다듬어 가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브람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모세와 이스라엘은 지금 광야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였지만 그 능력이 언제까지 자신들과 함께 할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이스라엘에게는 미지의 땅입니다. 그리고 그 땅은 주인이 없는 땅이 아닙니다. 가나안에 가면 가나안 원주민들이 이스라엘에게 양보할 땅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지만 이스라엘이 싸워서 정복해야할 땅입니다. 그들에게 아브람의 시작은 자신들의 시작과 다르지 않아 보였을 것입니다.
광야에선 이스라엘은 선택의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아담과 하와가 선택한 자신이 좋은 것을 결정할 것인가?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아니하시고 아브람 이야기를 통해 지금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것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내용의 성취임을 보여주시면서 믿음의 결단을 촉구하고 계십니다. 아브람을 부르시듯 지금 이스라엘을 부르고 계십니다. 아브람을 붙잡아 지키고 보호하셨듯이 이스라엘을 붙잡아 지키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를 이스라엘이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보여주면서 따라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브람을 복으로 만들어 가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도 일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은 오늘 우리들의 삶에도 동일하게 나타납 여집니다. 세상은 더 치열한 전쟁터 같은 삶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삶을 낭떨어지로 내몰기도 합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현실이 삶을 두려움으로 채워놓습니다. 광야에 선 이스라엘 같이 오늘 우리들의 삶도 광야와 같이 힘든 삶의 연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셨지만 세상이 더 커보입니다. 약속의 말씀이 도움이 될 것같지 않아보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이 유일한 출구라고 생각됩니다.
그 때 아브람의 여정을 떠올려 보십시오. 아브람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을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부르셨습니다. 아브람을 부르시고 복이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 약속의 성취를 알고 있습니다.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를 그의 육신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까지 누리게 하셨습니다. 신앙의 결단은 도박이 아닙니다. 운에 맡기는 삶이 아닙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의지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부르신 하나님께서 나를 책임지실 것을 신뢰하며 나를 복으로 만드시고 나를 통해 세상에 복이 흘러넘치게 하실 것을 기대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날이 주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아브람에게 하실 일을 나에게 하실 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보다 더 큰일도 나에게 행하실 것입니다. 내가 복이 되어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흘러넘치는 복된 한날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아브람의 이야기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한 주간의 삶에 어떤 기대를 할 수 있을까요?
3. 하나님께서 나를 복으로 만드시고 나를 통해 세상에 복 주시기를 원하고 계심을 믿으십니까? 이 사실을 고백하는 한 주간이 되기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불임과 나그네라는 불가능한 현실에서 약속을 바라본 아브람과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치열한 삶의 광야에 서서 우리도 눈앞의 한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을 성취하신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결단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그래서 마침내 나를 하나님 나라의 복으로 빚으사 세상을 향해 은혜를 흘러넘치게 하시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구원의 섭리를 일상에서 온전히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