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창 12:4-9절)
아브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동합니다. 가나안에 들어온 후에도 그는 고정된 자리를 택하지 않고,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가 장막을 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습니다. 이 짧은 구절은 아브람의 삶의 패턴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언입니다. 그는 “옮기고, 장막을 치고,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동하는 삶’과 ‘멈추지 않는 예배’의 균형을 보여줍니다. 신앙은 한 자리에 정착하는 안정된 구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하나님을 따라가는 여정이며, 그 여정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히브리어 ‘카라’(קָרָא)는 단순한 발성이나 개인적인 기도보다 더 강한 의미로,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람이 그 땅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증거하는 선포자의 역할까지 감당했음을 뜻합니다. 믿음은 단지 내면의 신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공개적인 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성경적 모델을 제시합니다.
또한 본문은 ‘장막’과 ‘제단’이라는 대조적 상징을 통해, 유목민 아브람의 삶의 불안정성과 하나님 임재의 영속성을 병치합니다. 장막은 인간의 임시성, 제단은 하나님의 영원성과 주권을 상징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브람은 장막을 칠 때마다 예배를 먼저 세웠고, 그가 머무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의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대 유목민의 삶은 정착과는 거리가 먼 불확실한 삶이었습니다. 아브람의 ‘장막’은 임시적이고 연약한 구조물로, 그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유목민들이 장막을 치는 위치와 제단을 세우는 장소가 곧 그 사람의 신앙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특히 ‘벧엘’(하나님의 집)과 ‘아이’(폐허 혹은 잿더미) 사이에 장막을 쳤다는 기록은 상징성이 큽니다. 아브람은 희망과 절망, 축복과 멸망 사이의 경계에 머물며, 그 중심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제단을 세웁니다. 이는 고대 세계관에서 “내가 어디에 속할 것인가”를 선언하는 선지자적 행위였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당시의 다신적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이 땅의 주인은 바알이나 아세라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선포하는 것이었고, 이는 곧 신앙 고백이자 정치적 도전이었습니다. 아브람은 믿음으로 살았을 뿐 아니라, 믿음으로 그 땅을 해석하고 다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세운 ‘제단’은 돌로 만든 구조물로, 하나님의 임재와 약속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영적 중심을 상징합니다. 즉, 그는 육체적으로는 떠돌이였지만, 영적으로는 중심을 놓지 않은 예배자였습니다.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본문은 깊은 울림을 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의 성막과 제단의 의미를 이 장면에서 더욱 깊이 있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역시 고정된 삶이 아니라 이동하는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막을 주셔서, 이동 중에도 예배를 지속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광야의 삶을 통해 이스라엘은 정착하지 못한 상태, 그러나 어디서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아야 하는 삶, 그것이 곧 믿음의 여정임을 배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동과 변화가 끊이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직, 이사, 관계의 변화, 건강 문제 등 끊임없는 ‘이동’ 가운데서 우리는 예배의 자리를 지키기 어려워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를 더욱 ‘정착’과 ‘안정’에 목마르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 머무느냐”보다 “어디에 예배하느냐”를 묻습니다. 우리는 이직, 이사, 질병, 인간관계 속 변화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선포해야 하는 ‘움직이는 예배자’로 부름받았습니다. 아브람처럼 오늘도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 예배로 하루를 해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디서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자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신앙이 환경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됨을 알아합니다.
한 선교사님이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삶의 자리가 계속 바뀌었지만, 그는 매일 하루의 시작을 기도로 여셨고, 어떤 나라에 있든 그 자리에서 조용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거처는 바뀌어도 주님은 나의 고정점이십니다.”
‘삶은 장막 같아 흔들리지만, 예배는 제단처럼 단단하게 세워야 한다.’ 이 말은 현대인의 삶에 꼭 필요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삶의 변화를 막을 수 없지만, 예배의 중심을 지킬 수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펴본 아브람이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장면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예배하게 될 것을 미리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성전보다 크신 분이시며(마 12:6),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요 4:23-24). 아브람이 장소를 옮겨 다니며 제단을 세운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움직이는 성전’이 되어 세상 어디서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예배자로 살아갑니다.
당신의 삶에 요즘 변화가 많지는 않으십니까? 새로운 일, 바뀐 환경,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신앙의 중심을 지키는 것이 어려워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장막을 옮기면서도 예배의 자리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떠도는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예배자’였습니다.
오늘 하루가 어지럽고 분주해 보이더라도, 잠시 시간을 내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 보실 수 있기를 권합니다. 단 5분의 기도, 작은 묵상 하나로도 그 하루는 전혀 다르게 흐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그 예배 한 순간이, 바람에 흔들리는 장막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제단이 될 것입니다. 흔들리는 하루 속에서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 질문
1. 아브람은 왜 이동하는 중에도 제단을 세웠을까요?
2. 나는 환경이 바뀔 때 신앙도 흔들리고 있진 않나요?
적용 질문
1. 오늘 내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예배의 중심을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요?
2. 반복되는 변화 속에서도 내가 놓지 않아야 할 ‘신앙의 제단’은 무엇인가요?
묵상 기도
주님, 내 삶이 장막처럼 흔들릴지라도, 예배의 제단은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중심을 지키며, 매일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