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13:1-4)
애굽에서 아브람은 한 번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비겁함 속에 숨어 하나님의 이름을 은폐했던 그가,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와 다시 공적으로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온 세상에 다시 공포하는 '신앙 재건'의 선언입니다. 예배의 회복은 성도의 정체성이 회복되는 최종 단계입니다.
4절은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고 강조합니다. 아브람은 새로운 종교적 체험을 찾아 떠돈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었던 '처음 약속'의 자리로 회귀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미완료 형태의 강조를 담고 있어, 그가 이제 일회적인 예배가 아니라 지속적인 예배의 삶으로 복귀했음을 암시합니다. 실패한 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은, 다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의 자비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그 땅의 소유권이 그 신에게 있음을 선포하는 행위였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거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이 땅의 진정한 통치자가 여호와이심을 알리는 공적 증언이었습니다. 비록 그는 나그네였으나, 예배를 통해 하늘 왕의 대리 통치자로서의 위엄을 회복한 것입니다.
광야 세대에게 제단은 생명과 같았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군사력이 아니라 성막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과 제단에서 타오르는 불꽃이었습니다. 아브람이 벧엘로 돌아와 제단을 수축했다는 기록은, 포로기 이후나 광야의 백성들에게 "우리가 살 길은 오직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다"라는 실존적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많은 현대 성도들이 '나만의 하나님'이라는 사적인 영역에 신앙을 가두어 둡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예배는 장막 밖으로 울려 퍼지는 공적인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주일에 드리는 공적 예배의 감격입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당당히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비로소 세상을 이길 영적 권세가 회복됩니다.
창세기 13:4은 청중을 '이름을 부르는 자'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애굽의 침묵은 죽음과 같았으나, 벧엘의 부르짖음은 생명입니다.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세상의 소음 속에 주님의 이름을 숨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이름을 부름으로 세상을 깨우고 있습니까?"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은 어느 날 밤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후, 자신의 옷 안감에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불, 불, 불!"이라고 적어 평생 간직했습니다. 아브람이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은 이론의 하나님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 개입하시어 불처럼 타오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를 때 우리 영혼의 냉랭함은 사라집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구약의 제단은 짐승의 피가 필요했지만, 우리는 단번의 제사가 되신 그리스도를 힘입어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갑니다. 아브람이 불렀던 여호와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아바 아버지'라는 가장 친밀한 부름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표현은 창세기 4장 26절, 에노스 시대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사건과 공명합니다. 이는 인류가 타락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유일한 소망이신 하나님께 시선을 돌렸던 구속사적 전환점입니다. 아브람의 예배 역시 개인의 회복을 넘어, 타락한 세상 속에서 거룩한 씨앗의 계보가 어떻게 예배를 통해 보존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모든 분석과 성찰의 종착역은 결국 예배입니다. 아브람의 여정이 벧엘의 제단에서 일단락되듯, 우리의 분주한 삶과 뼈아픈 실패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그 자리에서 해석되고 치유됩니다. 오늘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 진심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거룩하고 복된 날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하나님에 의한 우리의 새로운 역사가 다시 쓰여지는 한 날로 살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 질문]
1. 아브람이 애굽의 침묵을 깨고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그의 신앙 회복 과정에서 왜 가장 중요한 정점이 되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2. 애굽에서의 침묵과 벧엘에서의 부르짖음이 대조되는 지점을 통해, 성도의 예배 회복이 가지는 영적 권세는 무엇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적용 질문]
1. 당신의 일상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공적 신앙 고백이 희미해진 영역은 어디입니까? 다시금 기도의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선포함으로 영적 주권을 회복해야 할 구체적인 장소는 어디입니까?
2. 당신의 일상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예배의 제단'은 무엇입니까? 오늘 당신은 진정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삶의 주권을 드리고 있습니까?
[묵상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게 하여 주옵소서. 제 입술에 주님의 이름을 두시고, 제 삶의 모든 순간이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