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38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 관리자
  • 2026.06.17 07:05

본문: "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5장 21-24절)

 

오늘 살펴볼 본문은 셋의 족보 가운데 에녹에 대한 부분입니다. 셋의 족보에서 핵심적인 인물은 에녹과 노아입니다. 에녹은 10명으로 구성된 이 족보에서 7번째로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은 에녹을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에녹이 경건한 삶을 살아갔음을 의미하지만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교제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녹에게는 죽었다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900세 이상 오래 산 것이 하나님에게서 올 수 있는 가장 신성하고 명예로운 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허락된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음을 에녹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기록의 시점입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다라고 합니다. 물론 므두셀라는 낳기 전에도 경건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므두셀라를 낳은 것을 기점으로 해서 확실한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므두셀라가 에녹에게 어떤 의미였기에 그가 태어나서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기록이 필요했을까? 하는 지점입니다. 므두셀라의 이름의 의미는 '투창'과 '사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투창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에서 유추되어 '보낸다'를 의미한다고 확대해석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통해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상황은 하나님께서 므두셀라를 통해서 에녹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통해서 '그가 죽을 때에 그것을 보내리라'는 계시가 그의 이름에 담겨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것'이라는 것은 창세기 6장을 통해서 홍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5장의 계보를 통해 연대를 계산하면 홍수는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므두셀라를 통해 에녹에게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죽으면 내가 이 세상을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에녹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죽으면 심판이라고 하니 에녹이 므두셀라를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에녹은 온 신경과 시선이 므두셀라에게 집중되었을 것이고 그가 죽음의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므두셀라를 통제하거나 지킬 능력이 사람에게 없습니다. 에녹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상황에서 셋의 후손 즉,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후손의 일원이었던 에녹은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찾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가지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되면서 살아간 삶을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할 수 있을까요? 경건한 자손의 후예인 에녹은 므두셀라가 태어나기 전에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삶을 넘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도움을 구하며 하나님만 바라며 사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므두셀라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에녹은 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알 수는 없었습니다. 단서는 므두셀라가 죽을 때입니다. 에녹은 므두셀라에게 어떠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만 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잘못들이 생각나면 하나님 앞에 그러한 모든 잘못들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을 것입니다. 어디를 가던 무엇을 하던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서 데려가셨습니다. 그는 365세를 살았다고 기록하며 죽음을 기록할 수 없었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죽음이 삼키지 못한 아버지와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아들의 기록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중심에 '하나님과 동행'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반역으로 죄가 들어오고 죄의 결과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모두가 반드시 죽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죽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문명과 문화가 발달해도 모든 권력과 힘을 가졌어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죽음이 삼키지 못한 첫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람은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며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사는 삶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오는 것임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의 파라오 밑에서 죄와 사망이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절망스러운 것인가를 경험했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삶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삶입니다. 문명과 문화가 발달해도 자신들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소모품으로 버려집니다. 어떤 노력과 어떤 행동을 해도 그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파라오에게서 죄와 사망의 다스림 속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을 건져내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언약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는 길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청하십니다. 이 길은 나와 같이 동행하자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제사 제도와 율법을 모세를 통해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에녹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동행하시겠다고 부르셨다는 사실과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 부르셨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실제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 앞에 생명과 복 그리고 화와 저주가 있다. 그는 하나님의 법을 지킴으로 생명과 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갈 것을 강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셔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음을 전하고,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찾아오셔서 친히 너희와 동행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고 전합니다.  

 

이 놀라운 선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면서 그의 별명이 붙여졌습니다. 그 별명은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범죄와 아담과 하와에게, 그리고 가인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경건한 후손들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서 사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걸어갈 것을 언제가 권면하십니다. 그리고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강권하고 계신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온전히 허락하시기 위해 마지막 때에 그 아들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가 직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간 역사에서 죽음이 정상적이고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특별하고 예외적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는 죽음이 비정상적이고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 정상적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에녹이 정상적인 삶을 살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상적인 삶의 회복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에녹 같이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께 가지는 못하지만 죽음에 굴복하거나 삼켜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는 삶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바로 이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이고, 성령 안에서 행하는 삶이고,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삶이라고 성경은 강조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다시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받고 그 심판이 오늘 이루어질 것처럼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오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으며, 내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 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문명과 문화가 발전하여 완성되는 유토피아는 우리가 소망하는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사람들이 주도하는 세상은 발전과 성장을 거듭하는 것 같지만 결국 죄와 사망이 확대되고 강화되어 그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그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늘 주어진 한 날 죄와 사망의 다스림에 굴복하며 세상이 주는 헛된 소망을 좇아가는 삶이 아니라, 에녹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 안에서 말씀을 지키어 순종함으로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이 넘치는 기쁨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나는 현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2.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게 동행하기 위해 내가 바꿔야 할 습관이나 태도는 무엇입니까?

 

3. 오늘 하루,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결단은 무엇입니까?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나에게 허락된 삶이 에녹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만이 아니라 매일 내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세상을 거슬러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바쁜 일상의 삶 속에서도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행할 수 있게 하시며, 모든 순간, 선택과 결정이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게 도와주옵소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마음이 세상의 염려와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늘 주님과 함께 걷는,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북마크

RECENT POSTS

HOT HIT

게시물이 없습니다.

HOT COMMENTS

게시물이 없습니다.

RECENT 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