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69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 관리자
  • 2026.07.31 07:46

본문: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창 12:4-9절)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나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본문은 아브람이 처음 맞닥뜨린 현실을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었지만, 현실은 이미 그 땅이 차지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상황 설명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이 구절은 ‘그 땅은 이미 가나안 사람들의 소유였다’는 긴장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지만, 아직 현실적으로는 소유되지 않은 땅임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길에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과 ‘현재의 상황’ 사이에 놓인 간극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현실은 이미 누군가가 차지하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셨는데, 왜 아직은 아닌가요?’라는 질문은 지금도 우리의 믿음 가운데 반복되는 물음입니다. 약속이 실현되기 전, 그는 약속과 현실의 충돌 속에서 믿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 사이의 긴장감은 오늘날 우리도 겪는 신앙의 갈등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원전 2000년대의 가나안 땅은 수많은 족속들이 이미 정착하여 살고 있던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농경과 도시 문화를 중심으로 여러 도시국가를 이루고 있었고, 그 땅은 이미 다양한 신들, 문화, 권력에 의해 채워져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 같은 농경의 신들을 섬기며, 신과 땅을 동일시하는 종교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땅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단지 경제적 소유를 넘어서, 그 지역의 신적 주권을 주장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아브람은 이런 상황에서 아브람은 신적인 권리 없이, 무력도 없이, 외지인으로 그 땅에 발을 디딘 셈입니다.  유목민으로, 그 땅에 들어섰지만 마치 ‘외지인’ 혹은 ‘나그네’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정치·군사·종교적 기반이 전혀 없는 나그네의 신분으로 약속의 땅을 마주한 그의 입장은, 실로 불가능 앞에 선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아브람의 여정이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영적 충돌’과 ‘정체성 위기’의 현장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출애굽 후 약속의 땅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 땅은 이미 가나안 족속들로 가득했고, 그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라도, 현실은 여전히 싸움과 인내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고, 싸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끝까지 신뢰하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을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고 돌아온 자들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현실은 늘 벽처럼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아브람처럼 그들은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이 구절은 바로 그들의 현실을 대변하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현실적 도전을 안겨 줍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 사역에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약속이 맞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회복시켜 주신다고 했지만 갈등은 여전합니다. 직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랐는데 상황은 더 나빠지기도 합니다. 약속을 믿고 시작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응답 앞에서 우리는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가 당장 현실을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그 땅이 하나님의 약속 아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믿음은 약속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는 것입니다. 믿음은 결과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보다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약속이 진짜라면, 현실이 변할 것입니다. 그 시간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한 고등학생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약속하신 길을 보여주세요.” 하지만 결과는 낙방이었습니다. 그는 실망했지만, 오히려 그 실패의 시간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재확인하고, 다른 길로 방향을 튼 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늦추신 것이 아니라, 나를 준비시키신 것이었다.” '신앙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너머의 약속을 붙드는 것이다.' - 이 말처럼, 아브람은 현실에 낙담하지 않고 그 땅에 머물렀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아브람의 상황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약속의 땅을 보았지만 아직 소유하지 못했던 상황은,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스라엘의 심정과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으나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셨고, 그분 안에서 우리는 약속을 보았으나 여전히 현실의 갈등 속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이며(엡 1:11), 장차 모든 것이 회복될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혹시 지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걷고는 있지만, 눈앞의 현실이 전혀 달라 낙심하고 있진 않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하셨는데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기도 응답은 더뎌 보이고, 주변은 여전히 가나안 사람들로 가득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우리을 잊지 않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그 땅에 아직 머물러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여전히 거기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제 주어진 한 날, 묵묵히 믿음을 지키며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귀하고 지켜보고 계심을 확신하며 평안 가운에 거하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 질문

1. 가나안 사람이 거주하고 있던 현실을 아브람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2. 오늘 나의 삶에서 ‘약속’과 ‘현실’의 간극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나요?

 

적용 질문

1. 내가 지금 믿음으로 버티고 있는 영역은 어디인가요?

2. 약속이 더디 보일 때, 나는 어떤 반응을 선택하고 있나요?

 

묵상 기도

하나님, 약속은 있지만 현실이 막혀 있을 때, 낙심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때와 주님의 계획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나도 아브람처럼 말씀을 따라 현실을 이겨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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