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74 두려움의 유혹과 자기보존 본능(창세기 12:11–13를 중심으로)

  • 관리자
  • 2026.08.08 14:53

본문: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창세기 12:10-20절) 

 

애굽의 국경을 넘어서는 아브람의 마음에는 약속의 땅을 잠시 떠났다는 해방감보다, 낯선 이교도의 땅이 주는 서늘한 공포와 생존의 불안이 먼저 자리를 잡았을 것입니다. 그는 곁에 있는 아내 사래를 향해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은밀하고도 비겁한 제안을 조심스럽게 요구합니다. 기근이라는 자연적 재해를 피해 온 아브람 이제는 ‘죽음’이라는 실존적 위협 앞에서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과 언약에 대한 신뢰를 가장 처절하게 시험받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아브람은 사래에게 “나의 누이라 하라”고 요청하며, 사실을 교묘하게 비튼 거짓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아브람이 사용하는 ‘보존되리라’(וְחָיְתָה נַפְשִׁי, 베하예타 납쉬)는 표현은 그의 영혼과 생명이 오직 아내의 입술에서 나오는 거짓말에 달린 것처럼 비참하게 묘사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 속해 있어야 할 그의 생명의 주권과 안전이, 한순간의 기만과 나약한 인간의 꾀 위로 완전히 옮겨져 버린 영적 위기의 순간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의 사회적 관습 속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나그네(거류민)는 언제나 권력자들의 약탈 대상이 되는 취약한 존재였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여인을 동반한 외지인 남성은 권력자에게 살해당할 위험이 컸으며, 아브람은 이러한 잔혹한 문화적 배경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으나 그 지식이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리는 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주변 환경의 위협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데는 탁월했으나, 그 모든 환경 위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기록을 성막 중심의 광야 여정 중에 읽었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람의 두려움 속에서 가나안 정탐 후 낙심했던 자신들의 그림자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가나안의 거인들과 견고한 성읍을 보고 스스로를 ‘메뚜기’라 칭하며 절망에 떨었던 그들에게, 조상 아브람의 이 비겁한 모습은 인간의 본능이 얼마나 강력하며, 그 본능을 이길 힘은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뿐임을 가르쳐 주는 뼈아픈 교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브람의 이 거짓말은 단지 개인의 도덕적 결함을 넘어 언약의 계보를 스스로 끊어버릴 수 있는 치명적인 영적 범죄였습니다. 사래는 단순한 아내가 아니라 장차 ‘열국의 어머니’로서 거룩한 약속의 자손을 잉태해야 할 구속사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당장의 생존을 위해 그 고귀한 언약의 통로인 사래를 이방의 궁정으로 내몰며 위험에 빠뜨렸으며, 이는 하나님 나라의 거대한 비전보다 개인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도 인생의 두려움이 문을 두드릴 때, 아브람과 같은 ‘기만의 창’을 슬그머니 집어 들고 싶은 강력한 유혹에 시달리곤 합니다. 정직하게 행하면 큰 손해를 볼 것 같고, 하나님의 방식대로만 살면 이 험한 세상에서 도태될 것 같은 공포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아주 작은 거짓말이나 적당한 타협이 우리를 지켜줄 안전한 방패라 믿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를 영원히 가두는 영적 감옥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본문은 오늘 우리를 아브람이 겪었던 그 치열한 내면의 갈등 속으로 초대하여 정직한 대면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기만을 신뢰할 것인가”라는 갈림길은 모든 시대 신자들에게 매일 주어지는 숙명적인 질문입니다. 아브람은 그 순간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거짓을 더 신뢰했으며, 본문은 독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안전은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조작하고 꾸며낸 상황 위에 있습니까?

 

위대한 신학자 C.S. 루이스는 “지옥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오직 자신만의 작은 왕국을 지키려 하는 자들의 땅이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아브람은 애굽이라는 이방 땅에서 오직 자신만의 작은 왕국(육체의 생명)을 지키려 하다가, 하나님 나라가 준비한 거대한 영광과 신뢰의 유산을 통째로 놓칠 뻔했습니다. 우리의 자기보존 본능이 신앙의 가치를 압도할 때, 우리는 세상의 복의 근원이 아니라 도리어 문제와 수치의 근원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를 이 본문의 어둠을 뚫고 참된 신랑이자 언약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를 위험천만한 이방의 궁정으로 밀어 넣었으나,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는 신부 된 교회를 살리기 위해 친히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아브람의 처참한 실패는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과 사랑을 더욱 눈부시게 빛나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 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며 잠 못 이루게 하는 두려움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 두려움을 피하고자 당신이 은밀히 준비하고 있는 ‘작은 거짓말’이나 ‘세상적 수단’이 있다면 이제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우리의 고귀한 생명은 타인의 입술이나 세상의 변덕스러운 호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의 손길에 달려 있음을 믿을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이 새로운 한 날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는 복된 날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 질문]

아브람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애굽이라는 환경적 변화 앞에서 기만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두려움이 엄습할 때, 당신은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묵상합니까 아니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인간적인 방어 기제를 먼저 작동시킵니까?

 

[적용 질문]

현재 당신의 삶에서 정직함을 포기하게 만들거나 타협을 정당화하게 만드는 '두려움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나의 안전과 유익을 위해 본의 아니게 희생시키고 있거나 상처를 주고 있는 가족, 동료, 이웃이 있다면 누구인지 돌아보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묵상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위협과 압박 앞에서 비겁한 타협안을 찾아 헤매지 않는 정직한 영을 부어 주옵소서. 나의 생명과 안전이 오직 주님의 강한 손과 편 팔에 있음을 온전히 고백하며, 두려움의 거센 파도를 넘어 평강의 왕이신 주님만을 바라보는 담대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북마크

RECENT POSTS

HOT HIT

게시물이 없습니다.

HOT COMMENTS

게시물이 없습니다.

RECENT 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