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91 관찰되는 신앙: 이방인의 시선과 거룩한 부담(창세기 13:7下 를 중심으로)

  • 관리자
  • 2026.09.03 19:54

본문: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창세기 13:5-13절) 

 

아브람과 롯의 목자들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을 때, 성경은 마치 카메라의 앵글을 돌려 그 현장을 지켜보는 또 다른 존재들을 비춥니다. “그때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이 짧은 기록은 언약 가문의 내부적 갈등이 결코 그들만의 사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으며,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들의 날카로운 관찰 아래 놓여 있었음을 환기시키는 거룩한 경고입니다.

 

히브리어 문맥에서 ‘거주하였더라’(יֹשֵׁב, 요셰브)는 단어는 단지 그들이 그 땅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 보도를 넘어, 그들이 그 땅의 ‘주류 세력’으로서 나그네인 아브람 가문을 주시하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아브람이 벧엘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선포했던 그 신앙의 고백들이, 이제는 실제적인 갈등 상황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이방인들은 흥미롭고도 비판적인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문화적 배경에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들을 섬기며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던 원주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아브람 가문의 번성과 그에 따른 내분은 흔히 볼 수 있는 이기적인 권력 다툼으로 비춰질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아브람이 기득권을 주장하며 롯과 추하게 싸웠다면, 그가 전파했던 여호와 신앙은 이방인들에게 한낱 공허한 메아리나 위선적인 종교 놀이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이 본문을 광야에서 읽었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이방 민족들에게 어떤 ‘영적 인상’을 주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거대한 관객들 앞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연기하고 증명해 내야 하는 ‘구속사의 배우’들과 같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다툼조차 세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판가름하는 척도로 사용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부여합니다.

 

성경의 틀에서 보자면 신자의 삶은 ‘세상을 향한 선교적 서사’(Missional Narrative)입니다. 아브람은 12장에서 애굽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가렸던 뼈아픈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다시 찾아온 위기 앞에서, 이방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성숙한 선택을 내립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속의 거룩’(Holy in the World)입니다.

 

오늘날 성도와 교회가 겪는 가장 큰 위기는 세상이 우리를 박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비웃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는 거룩을 말하지만, 세상적인 이권 다툼이나 갈등 상황에서 세상과 똑같은 논리로 반응할 때, 세상은 더 이상 우리의 복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도덕적 수준이 세상의 상식보다 낮아질 때, 우리가 쌓아 올린 제단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세상은 갈등을 ‘권력의 이약’로 보며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이 상황을 ‘하나님의 증언 이야기’로 재구성합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비웃음을 사서는 안 된다”는 더 높은 가치를 선택함으로써, 그는 가나안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여호와 신앙의 탁월함을 압도적으로 증명해 냈습니다.

 

본문 7절 하반절의 기록은 독자에게 ‘사회적 긴장’을 불러일으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당신이 다투고 있는 그 현장 옆에 믿지 않는 이웃이 서 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그렇게 행동하겠는가?”라고 묻습니다. 성도의 형상은 골방에서의 기도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시선이 머무는 갈등의 현장에서 어떻게 ‘평화의 사도’로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성경의 맥락에서 이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곧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는 말씀으로 완성됩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사람들 앞에서 보여준 양보는 훗날 사도들이 이방 세계 속에서 보여준 거룩한 삶의 원형이 되었으며, 오늘날 어두운 세상 속에 던져진 교회의 존재 이유를 선명히 밝혀줍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갈등과 고민을 지켜보고 있는 ‘가나안 사람’은 누구입니까? 당신의 신앙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려는 불신자 가족, 직장 동료, 혹은 이웃들입니까? 그들의 시선이 우리를 위축시키게 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고귀하고 다른지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우리의 정직한 양보 한 번이 수만 마디의 전도 강연보다 더 강력하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웅변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한 날 하나님의 역사를 나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나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복된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질문]

1. 왜 성경 기자는 아브람과 롯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언급했을까요?

2. 이방인의 시선이 의식될 때, 나의 갈등 해결 방식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적용 질문]

1. 현재 내 주변에서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평가하고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2. 그들 앞에서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위해, 이번 주에 특별히 절제하거나 양보해야 할 말이나 행동은 무엇입니까?

 

[묵상기도] 

세상의 빛 되신 주님, 저의 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투명한 유리창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갈등의 순간에도 저를 지켜보는 시선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나의 이익보다 주님의 명예를 더 소중히 여겨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관용을 보여주는 참된 성도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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