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95 약속의 주권: ‘내가 주리라’는 절대적 선언(창세기 13:15–16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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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9.03 19:58

본문: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창세기 13:14-18)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약속을 주시며 “내가 네게 주겠다”는 선언을 반복하십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주어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아브람이 전략을 짜거나 전쟁을 치러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인 은혜로 거저 주시겠다는 의지 표명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실력이나 조건에 매달린 위태로운 계약이 아니라, 변치 않는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한 견고한 선포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선포를 믿음으로 취하는 것뿐입니다.

 

성경 원문의 표현을 살피면 하나님은 아브람이 “지금 보고 있는” 그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현재의 보잘것없는 상태를 넘어서는 확신입니다. 또한 자손의 약속을 “땅의 티끌”에 비유하신 것은 인간의 수리적 계산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창조적 스케일을 보여줍니다. 아브람의 불임이라는 차가운 현실을 하나님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완전히 덮어버리시는 장면입니다. 티끌을 보며 절망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티끌을 자손의 수로 바꾸시는 창조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나그네에 불과했던 유목민 아브람이 광대한 영토를 소유한다는 것은 당시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법적 권리도, 군사적 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법도나 힘의 논리를 뛰어넘어 “영원히” 주겠다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당장의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부터 영원까지 흐르는 주권적인 결단에 근거합니다. 인간의 등기권보다 더 확실한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보증의 말씀입니다.

 

신앙의 원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을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내가 주겠다”는 말씀은 우리를 불안한 경쟁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신실하심 안에서 안식하게 만드는 복음의 진수입니다. 아브람이 롯보다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기로 선택하셨기에 이 약속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며, 우리는 그 은혜 위에 우리 인생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세상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빨리 선점해야 살아남는다”고 우리를 독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티끌처럼 많게 하리라”며 인간의 좁은 계산을 뛰어넘는 풍성한 공급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성경은 세상의 결핍과 불안을 하나님의 풍요와 평강으로 이겨버리는 위대한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결핍의 공포가 우리를 몰아붙일 때, 우리는 무한한 자원을 가지신 하늘 아버지의 풍요로운 이야기를 기억하며 미소 지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언은 우리를 ‘신뢰의 사람’으로 빚어갑니다. “내가 주하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인생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헛된 시도를 멈추게 됩니다.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주님의 신실하심에 인생을 맡기는 성품이 형성됩니다. 참된 성도는 내 손바닥에 쥔 결과물이 아니라, 약속하신 주님의 손을 붙잡고 걷는 사람임을 삶으로 증명해 냅니다.

 

아브람의 자손에 대한 약속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혈연적인 후손을 넘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적 후손이 된 우리 모두가 이 약속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내가 주리라”는 선언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심으로 그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이방인에게 미치게 되었고, 우리는 그 풍성한 기업을 상속받는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말씀을 통해 자신들이 가나안으로 향하는 명분이 조상 아브람의 실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이 잘나서 땅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기 때문이라는 확신은 그들이 험한 길을 걷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사역과 삶의 명분 역시 나의 유능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에 있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끝까지 완주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내 미래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노력한 만큼 얻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고, 자원이 부족해질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인생의 주권자가 누구인지를 물으십니다. 당신의 인생 지도를 그리고 계신 분이 주님이시라면, 당신은 확보의 스트레스가 아니라 약속의 기대감으로 오늘을 살 수 있습니다. 내일을 향한 염려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늘 주신 약속의 땅을 기쁨으로 밟아야 합니다.

 

오늘도 새롭고 복된 날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복된 날, 우리의 노력만으로 인생을 지탱하려 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내가 네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부족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함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아침, 그 절대적인 선언 앞에 우리의 불안을 내려놓고, 주님이 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평안함 속에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의 “주리라” 하심이 현실이 되어 우리의 삶을 채워가는 복 된 경험을 가지는 한 날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질문]

1. 하나님이 “내가 주겠다”고 말씀하실 때, 아브람은 자신의 현실과 비교하며 어떤 갈등을 느꼈을까요?

2. 나는 내 인생의 열매를 내 노력의 결과물로 봅니까, 아니면 주님의 주권적인 선물로 봅니까?

 

[적용 질문]

1. 오늘 내가 내 힘으로 쟁취하려고 조바심내고 있는 ‘영역’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주님께 맡겨드리겠습니까?

2. “내가 주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오늘 내가 평안함으로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묵상기도] 

신실하신 주님, “내가 주겠다”는 주권적인 선포 앞에 저의 모든 염려와 계산을 내려놓습니다. 제가 쟁취해야만 살 수 있다는 세상의 거짓말에 속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하며 오늘 저에게 주어진 자리에 충성하게 하여 주옵소서. 제 인생의 결론을 주님이 아름답게 맺으실 것을 믿고 안식하며 시작하는 복 된 하루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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